“최근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요?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살 것인가 하는 것이죠. 이는 수협은행이라는 기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직원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900명의 수협은행 직원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행 방침과 분위기는 고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12일 서울 송파구 수협은행 본점에서 아주경제와 만난 김진균 수협은행장은 인터뷰 내내 ‘고객’과 ‘직원’을 언급했다. 디지털금융에서부터 여·수신상품에 이르기까지 은행 업무 전반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고객지향’을 강조했다. 25년여간 직접 영업현장을 누빈 내부 출신 행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그리고 이들과 직접 대면하는 직원들이라는 인식이 몸에 밴 듯했다.
김진균 행장은 “기본적으로 은행이라는 건 직원들이 현장에서 고객을 맞는 구조이다보니 밝은 인상을 갖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직원들이 수협은행에서 길게는 30년간 근무할 사람들인데 이들이 현장에서 무탈하게 근무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 직원들에게 자기개발 기회를 부여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예산을 전년 대비 350% 이상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행장의 이 같은 행보가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 것일까. 지난달 부로 공식 출범 5년 차를 맞은 수협은행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출범 전인 지난 2016년 당시 33조2000억원에 불과했던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 72% 증가한 57조1000억원으로 불어났고 당기순이익(세전) 역시 577억원에서 작년 말 기준 2840억원 수준(추정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5년 만에 순익이 492% 성장한 것이다.
올해로 60세(1963년생)가 된 김 행장은 30여년간 수협은행에 몸담아왔다. 충남 부여 출신으로 수협중앙회에 입회한 시점은 그의 나이 29세이던 1992년이다. 25년을 영업 현장에서 근무했는데 수협은행 내에서는 전설적인 '영업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8년에 처음 임원을 달았고 2019년부터 수석부행장으로 은행 내 5개 그룹을 총괄하며 경영전략과 기획을 책임졌다. 현재 수협은행의 틀은 대부분 김 행장 손을 거친 셈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 출신 등 이른바 '모피아' 일색이던 행장직에 내부 출신이 선임된 것도 그가 처음이다.
김 행장은 최근 수협은행이 빠른 성장세를 기록한 이유에 대해 자산포트폴리오의 안정적 배분과 양질의 상품 출시, 주거래고객 기반 확대를 꼽았다. 그는 “과거 기업금융 비중이 컸던 자산 포트폴리오를 개인금융과 기업금융 간에 45대 55 수준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했고 대출자산 건전성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며 “여기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다양한 상품 출시, 고객접점 채널 다양화 등 다각도의 변화를 꾀한 것이 주효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김 행장은 자신의 경영방침을 두고, 현장에서 체득해 온 고객과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금리 0.01%포인트 차이에 따라 단숨에 주거래은행을 바꾸는 고객들도 있지만 반대로 은행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안정적으로 함께 가려는 고객도 적지 않다"며 "대형 시중은행처럼 고객을 단순히 영업대상이 아닌, 서로 진심이 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과거 '영업왕' 시절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쑥스러운 듯 수협은행에 대한 애사심(?)과 고객과의 소통을 강조한 김 행장은 최근 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수협은행의 경우 은행과 회원조합 간 온라인망을 같이 쓰고 은행 점포에서 회원조합 거래도 할 수 있다"며 "어느날 모 금융센터에 회원조합 거래손님이 방문했는데 우리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를 했던지 고객이 너무 고맙다며 본인의 회사자금 100억원을 예치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혜택은 아니지만 현장에서의 작은 감동이 고객 확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취임 2년 차를 맞은 김 행장의 올해 경영목표 역시 신규고객 확보와 핵심예금 증대다. 김 행장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고객과의 만남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심예금 증대 역시 조달구조 개선을 통한 고객 확보라는 측면에서 동일 선상에 있다. 그는 “고객에 대한 관심과 애정, 면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핵심예금 영업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거대해진 시중은행과 무서운 기세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빅테크 등 틈바구니 사이에서 수협은행에 대한 상당수 고객들의 인식은 여전히 낯설다. 일반 시중은행과 동일한 '1금융권 은행'이지만 이름만 듣고 '어민들만 이용하는 은행'으로 착각할 여지가 높아서다. 수협은행 역시 시중은행 등에 비해 낮은 인지도를 어떻게 하면 높일지 고심하고 있다.
김 행장은 이에 대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를 겨냥한 자체 유튜브 콘텐츠 제작도 그 일환이다. 작년 4월 첫선을 보인 후 매월 연재 중인 '수협은행 N년차' 애니메이션은 수협은행 임직원들이 업무 중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희로애락을 각각의 주제에 맞춰 재미있게 그렸다. 수협은행 내 유튜버 'Sh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하는 브이로그 영상 역시 호평을 얻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 특히 은행업의 경우 '레드오션'(포화상태)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김 행장은 여전히 수협은행의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다보면 시험점수를 90점에서 95점으로 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50점에서 70점으로 올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며 "대형은행들이 90점에서 95점으로 올리고 있는 단계라면 우리 수협은행은 이제 50점 수준"이라며 "(수협은행의 경우) 아직 시장점유율이 낮은 만큼 역량에 따라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미처 관심을 두지 않는 특화상품과 발빠른 제휴 역시 수협은행만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김 행장은 "시중은행들이 큰 규모의 영업과 상품에 주력할 때 우리는 그 밖에 있는 상품에 주목한다"면서 "과거 교회대출도 저희가 (금융권 내에서) 처음으로 진행했고 어린이집 대출이나 요양원 대출 등도 저희가 선제적으로 도입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휴 부분도 다른 금융권에 비해 빨리 시작해 이종업종과의 제휴 측면에서 고객 수를 늘릴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 행장은 "대형은행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발빠르고 세밀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이라며 "수협은행의 지난해 실적은 성장성이나 수익성, 건전성 측면에서 시중은행과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형 금융그룹과 같은 거대 담론이나 구호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부분에 집중해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면서 "여·수신 고객들을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늘려나가는 작업을 최근 1~2년간 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금융권의 가장 큰 화두는 '디지털'이다. 수협은행 또한 예외 없이 '디지털금융' 도입에 적극적이다. 수협은행은 오는 6월 자체 모바일앱 '헤이뱅크(Hey! Bank)' 내에 송금 시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나 이모티콘 등을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 송금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만기일, 납입금액, 자동이체 주기 등을 고객이 직접 설계할 수 있는 ‘DIY 송금 서비스’도 하반기 중 선보일 예정이다.
김 행장은 "디지털 혁신은 선택이 아닌 은행 생존의 필수요소"라면서 "창구업무 디지털화, 업무간소화 등 업무프로세스 자동화 기반 확대를 통해 업무효율화의 관점에서 기존 관행을 혁신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고객관리 커버리지 확대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유행처럼 퍼지는 금융권 내 디지털 신기술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잃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금융 도입에 있어서도 역시 '고객이 먼저'라는 것이 김 행장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 은행권이 카카오뱅크 등을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앞서가진 못한다"며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야 한다. 작지만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디지털 혁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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