㉘대를 물려 내려오는 레시피 담양 10미(味)<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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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위원
입력 2022-03-0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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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본향에서 빚는 술과 음식

 <연동사의 곡차 추성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시대 연동사에서 살쾡이가 훔쳐 먹던 술 이야기가 나오지만 제조법이나 특성에 관해서는 적어 놓지 않았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가 쓴 추성지(秋城誌)에는 ‘이 지역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약초와 보리 쌀 등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어 곡차(穀茶)로 마셨다. 이 술을 신선주라 하여 허약한 사람들과 애주가들이 즐겨 마셨고 그 비법이 구전(口傳)한다’고 나와 있다. 곡차는 절에서 술을 좋아하는 대사들이 술을 ‘술’이라고 부르기가 겸연쩍어 ‘차’라고 하고 마신 데서 유래한다.
추성고을 양대수 명인의 증조부가 연동사의 큰 시주(施主)였을 때 주지 스님한테 구전으로 내려오던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이후로 추성주는 양 명인 집안의 가양주(家釀酒)가 됐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1980년대까지 쌀 소비 억제와 세금징수를 목적으로 가양주 금지 정책이 계속됐다. 1980년대 후반 민속주 제조가 허용되기까지 70여 년의 긴 공백으로 한국에서 수많은 민속주의 맥이 끊겼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양조법으로 추성주를 빚는 주류회사 추성고을 양대수 대표.[사진=추성고을 제공]

추성주를 빚는 방법은 다른 술보다 복잡하다. 먼저 멥쌀과 찹쌀을 3대1로 섞어 고두밥을 지은 뒤 여기에 엿기름과 물을 부어 당화시킨다. 이렇게 만든 밑술에 12가지 한약재 추출물을 넣고 발효 숙성시키면 알코올 15%의 대잎술이 된다. 이를 증류하면 알코올 40% 소주가 되고, 여기에 한약재 추출물을 2차로 가미하고 20℃에서 숙성한 뒤 대나무 숯으로 걸러내 100일 이상 재우면 알코올 25%의 추성주가 된다.
증조할아버지가 주지에게서 받은 추성주의 비법을 300여 자 한문으로 써놓았고 이것을 할아버지가 한글로 풀어 썼다. 추성주는 갈근 구기자 상심자 오미자 두충 산약 연자육 우슬 육계 의이인 창출 등 12가지 약초가 들어간다. 추성주에 들어가는 한약재는 약재에 따라 달이거나 찌고 볶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세한 양조기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1988년에 돌아가셨다. 그는 대학의 연구기관과 한약방을 열심히 찾아다녀 구기자와 갈근은 달이고, 오미자와 우슬은 볶고, 연뿌리는 찌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해서 2000년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절간의 곡차가 추성주로 전해진 내력을 적은 연동사 안내문. [사진=황호택]

'대통대잎술 십오야'는 자연산 대나무통에 대잎술을 주입해 통 안에서 2차로 숙성시킨 약주의 일종이다. 쌀과 각종 한약재를 넣어 술을 빚고 대나무 향이 배도록 통으로 자른 대나무에 넣는다. 멥쌀과 찹쌀을 주 재료로 솔잎 인삼 대추 구기자 산약 오미자 당귀 등 10여 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 십오야는 달짝지근한 맛과 함께 각종 한약재들이 조화롭게 맛을 낸다. 알코올 도수는 15도.
대의 몸통에 구멍을 뚫어 약주를 집어넣고 대로 다시 막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도 냈다. 파라핀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인데도 중국산은 술 넣은 구멍을 파라핀으로 막고 대 몸통에도 술이 새지 않도록 파라핀을 바른다. 대통주는 냉장 보관하고 30일 안에 마셔야 한다. 상온에 오래 놓아두면 2차 발효로 식초가 된다. 추성고을에는 12도짜리 발효주인 댓잎술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타미앙스'는 1년에 1000 병만 만들어 한정 판매하는 40% 프리미엄 증류주. 타미앙스는 담양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쌀 구기자 오미자 산약 등 10여 가지 한약재를 가지고 대나무 숯 여과 제조법으로 2번의 증류 과정을 거쳐 대나무통에서 장기간 숙성해 만든다. 
양 대표의 아들 재창씨도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아버지의 전수자로 전통주 제조 기법을 익히고 있다.
 
<궁중에서 먹던 떡갈비>
떡갈비는 본래 궁중에서 왕이 즐기던 음식이었다. 승정원일기나 일성록에 '갈비(乫非)'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乫非는 순우리말 갈비를 이두체로 적은 것이다.
임금 체통에 갈빗대를 손에 쥐고 목에 힘줄을 돋우며 살을 뜯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인들의 이가 금이 가거나 부러질 위험도 있었다. 궁중 나인들은 살점을 따로 발라 다진 뒤 갖은 양념을 해서는 다시 뼈에 붙여 구워냈다. 이 궁중의 갈비 요리가 낙향한 고위 관료를 따라 퍼지면서 전남 담양 떡갈비가 생겼고, 궁중 나인들에 의해 경기 떡갈비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신식당에서 떡갈비를 손질하고 있다. [사진=황호택]

노송당(老松堂) 송희경(宋希璟·1376~1446)은 1411년에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0년(세종2년)에는 회례사(回禮使)로 뽑혀 아시카가(足利) 막부가 있는 일본 교토를 다녀온 외교관이다. 일본에 다녀온 일을 기록해 ‘노송당 일본행록(老松堂 日本行錄)’을 펴냈다. 1425년 노송당이 담양으로 퇴거해 살면서 궁중에서 맛보았던 진미를 담양에 전한 것이 바로 떡갈비다. 면앙정 송순(1493~1582)이 송희경의 고손자다.
담양에서는 신식당과 덕인관이 역사가 오래된 떡갈비 집이다. 담양의 떡갈비 재료는 1등급 이상의 암소갈비를 쓴다. 먼저 소고기의 갈빗대에서 살점을 떼어낸다. 갈빗살을 잘게 다져서 네모진 떡의 형태로 다듬는다. 갈비뼈에 고기를 붙인 후 진간장 참기름 후추 대파 마늘 양파 등으로 만든 양념에 재운다. 식당마다 레시피가 달라 양념장에 배즙 사과즙 정돔(맛술)이 들어가기도 한다. 예전에 화로로 구워냈는데 요즘은 참나무 대나무 숯으로 굽는다.
신식당의 창업자 남광주씨는 열여섯에 시집을 왔다. 음식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담양의 큰 잔치 음식을 만들어주다가 1909년 식당을 시작했다. 그러니 한 세기가 넘은 식당이다. 다음에 신금례 시할머니가 며느리로 들어와 자신의 성을 따 상호를 신식당이라고 지었다. 그 후 이화자 시어머니를 거쳐 지금은 신식당의 4대 며느리 한미희씨(46)가 떡갈비를 만들고 있다.
                     

1963년 개업한 떡갈비 전문점 덕인관.[사진=황호택]

덕인관 대표 박인관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며 자랐다. 박인관은 전통음식의 원형을 지켜보자는 생각에서 시간 날 때마다 어머니가 손대중 눈대중으로 하는 떡갈비 조리법을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이게 덕인관의 기본 레시피다. 1963년에 덕인식당이라는 상호로 개업했으니 올해로 60년이 다 돼간다.
 
<창평국밥·암뽕순대>
옛날에 창평이 별도 현이던 시절 창평현청과 가까이에 창평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장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술국을 만들어 팔다가 나중에는 밥을 말아준 것이 창평국밥의 시초.
창평장터 가까이에 돼지 도축장이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창평국밥과 암뽕순대를 만들었다. 창평국밥은 돼지 뼈 국물에 선지와 콩나물을 넣어 맑은 색을 띠게 한 것이 특징.
장터에 사람이 모이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양이 많고, 값이 싸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창평장에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국밥은 7천원, 모듬과 막창은 8천원, 비빕밥과 국수는 5천원이다. 옛날엔 5일장에나 먹어보던 창평국밥을 5일장이 사라지면서 매일 먹을 수 있게 됐다. 반찬도 깔끔하고 감칠맛이 있다. 점심 때가 되면 7,8개 국밥집에 긴 줄이 만들어진다.

창평장터에는 국밥집이 예닐곱 개 있으나 평일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사진=황호택]

창평국밥은 돼지의 창자에 각종 채소와 양념을 넣어 만든 순대와 내장 부위를 끓인 음식이다. 순대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나 보통 숙주 배추 두부 선지, 갈은 돼지고기를 양념과 함께 치대 깨끗이 씻은 곱창에 넣어 만든다. 내장순대국밥은 여기에 돼지의 내장 부위인 염통 오소리 간 등을 추가한 것이다.
돼지 내장 중에서도 별미로 꼽히는 부위가 암퇘지의 자궁인 새끼보다. 애기보라고도 한다. 암뽕은 구이 수육 국밥 순대의 재료가 된다. 암뽕수육은 연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있어 인기가 높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순대는 돼지 피가 들어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으나 채소와 곡류 두부 등을 부재로 사용해 영양의 균형이 맞아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주로 국과 찜으로 먹지만 요즘에는 철판구이 튀김 전으로도 만든다. 
 
<죽순요리>
죽순은 대나무의 땅 속 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연한 싹이다. 고려 후기 학자 이곡((李穀·1298~1351)의 시가와 산문을 아들 색(穡)이 1364년 엮은 가정집((稼亭集) 제17권에 시 '죽순을 먹으며[食笋·식순]'  3수가 나온다.

맹종죽 숲에 나는 죽순. 대나무는 30~40일이면 키가 다 자라지만 죽순의 몸피는 처음 그대로 유지한다. [사진=담양군 제공]

나무를 심어도 재목이 못 되면 모두 땔나무(種木不材皆可薪)
소채를 심어도 푸른 옥 묶음이 최고의 보배 (種采蒼玉最堪珍)
어린 싹이 군침 흘리는 객을 만나지 않는다면(免敎蒙稚逢饞客)
모두 된서리 뚫고 티끌 벗어난 대가 되련마는(摠是凌霜不受塵)

이 시에서 '푸른 옥 묶음'은 죽순의 별명. 보통 창옥속(蒼玉束)이라고 한다. 대나무의 서해안쪽 북방한계선은 충남. 이곡의 고향 충남 한산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죽순요리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죽순이 원기를 회복시킨다고 나와 있다. 질 좋은 단백질과 무기질, 섬유질이 풍부하다. 죽순이 한창 자라는 4월 중순~6월 말이 가장 맛있다. 다른 음식과 잘 어울릴 뿐아니라 조리법이 다양하다. 죽순회 죽순된장찌게 죽순장아찌 죽순들깨볶음, 죽순구이···. 깻잎 논우렁이, 다진 마늘 등과 양념장을 비벼 무치면 죽순회무침이 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죽순을 좋은 식재료로 치며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다. 중국에 '좋은 죽순이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얼마나 죽순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담양군은 죽순 요리를 개발 보급하기 위해 매년 전국죽순요리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돼지숯불갈비>

담양 돼지숯불갈비의 원조인 승일식당은 초벌구이를 주방에서 한다. [사진=황호택]

담양식 돼지숯불갈비는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 먹지 않는다. 적당한 두께로 잘 저며진 갈비에 간장 고추장 설탕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깨소금 참기름 청주 후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을 붓고 주물러 고루 배게 한다. 그리고 뜨겁게 달군 석쇠에 초벌구이 한 후 손님상에 내기 직전에 적당한 온도의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낸다. 묵은지 깻잎 상추 마늘 쌈장 파절이 등과 곁들여 먹는다. 4인분을 주문한다면 먼저 2인분을 먹고 그다음에 2인분을 추가 주문하는 것이 좋다. 따뜻할 때 담양식 숯불갈비의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문을 연 승일식당이 담양식 돼지숯불갈비의 원조. 처음에는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가 양복점 다방 등 주변 상가를 사들여 넓혀나갔다. 차량이 밀려들자 인근 논을 사서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4인용 테이블이 90 개. 평일에도 빈 테이블이 별로 없다. 코로나에도 위축되지 않는 식당이다. 

참고문헌
1. 오한샘 최유진 《천년의 밥상》 MID, 2012
2.㈜상상오 편집‧디자인 《맛집멋집 아카이빙-담양》광주광역시·나주시·담양군·목포시, 2020
3. <세종실록지리지>《조선왕조실록》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곡)》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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