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코플랜트의 기업공개(IPO)가 시기를 두고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IPO 시장이 침체기를 맞아 상장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란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엔 SK에코플랜트를 여전히 건설사로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지배적이란 점이 더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상장이 늦어지며 SK에코플랜트의 '친환경'을 통한 체질변화 전략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회사가 2023년 상장을 목표로 한 투자유치 작업 과정에서 환경·폐기물 사업 부문을 확대하면서 오히려 재무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SK에코플랜트의 기업가치를 둘러싼 숙제가 남아있어 회사의 IPO 전략마저 흔들어 놓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늦춰진 SK에코플랜트 'IPO 시계'…박경일 대표의 달라진 신년사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는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IPO를 준비했다. 회사는 작년 4월 IPO를 진행할 대표 주관사로 NH투자증권·크레디트스위스(CS)·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하며 기업공개를 향한 닻을 올린 바 있다. 다만 현재까지 상장예비심사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회사의 IPO가 늦춰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IPO에 대해 달라진 시각은 작년과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는 2022년 신년사에서 "오랫동안 2023년 상장을 준비해온 만큼 2022년은 상장 준비를 완성하는 해"라면서 상장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올해 신년사에서 박 대표는 "2023년은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의 한 해가 돼야 한다"고 언급했을 뿐, 상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했다.
2021년 5월 안재현 SK디스커버리사장(전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이 사명을 변경할 당시 제시한 목표 밸류는 10조원이다. 이를 이어받아 IPO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박경일 대표다. 박 대표는 SK그룹 내 M&A 전문가로 꼽히는데, 과거 SK텔레콤의 아이리버 인수, SK엔카 한앤컴퍼니 매각 등이 그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기업가치 논란·재무부담 가중·IPO 시장 침체 '3박자' 혼재
SK에코플랜트의 상장 로드맵을 살펴보면, 회사는 2023년까지 에비타 8500억원 중 50%를 친환경 사업에서 벌어들인 후 기업가치 10조원을 목표로 상장에 나설 예정이었다. 에비타(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는 기업이 장사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현금창출력을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다.문제는 에비타 한 축인 영업이익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16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9% 감소했다. 에비타도 2904억원을 기록했다. SK에코플랜트가 친환경 기업으로 전환하기 전 2020년 감가상각비 규모는 크지 않았다. 당시 영업이익 2849억원, 에비타 3147억원이었다. 하지만 202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사는 영업이익 1160억원, 에비타는 2089억원을 기록하며 감가상각비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게 됐다. 최근 3분기 실적도 2021년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권에서는 회사의 늘어난 차입금도 부담으로 작용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SK에코플랜트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장단기 차입금은 3조7687억원으로 전년(2021년) 말(2조4703억원) 대비 1조원 넘게 늘어났다. 단기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157억원으로 전년 말(6196억원) 대비 약 50% 증가했다. 기업의 단기채무지급능력 지표인 유동비율도 98.6%에 불과하다. 최근 신용등급이 내려간 태영건설(106.9%), 한신공영(159.9%) 보다 낮은 수준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만약 유동비율이 100 이하면 위기 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한동안 시장에서는 SK에코플랜트를 건설사로 봐야할지, 폐기물업체로 봐야할지 헷갈려했다. 다만 매출 실적을 놓고 봤을 때, 아직은 회사를 건설사로 바라봐야 하는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K에코플랜트의 건축·주택(1조1812억7700만원)과 인프라(6203억8700만원)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전체(4조8941억9600만원)의 36.81%에 달한다. 반면 환경(5256억6900만원)과 에너지(3080억3100만원)가 전체 사업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03%에 불과하다.
여기에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제 값을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새해 기업공개(IPO)시장의 '대어'로 꼽혔던 컬리가 상장을 철회한 데 이어 11번가, 케이뱅크, 골프존카운티 등의 상반기 상장도 사실상 연기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호황일 때 평가받던 몸값을 높게 받으려 하는 반면, 투자자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IPO 시장 침체가 올해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2023년 IPO시장은 상장 종목수 기준으로 62~74개 수준의 상장이 예상되는데 이는 최근 10년 평균과 5년 평균 대비 5% 감소한 규모로 공모주 시장 활황기인 코로나 이후 기간(2020년~2021년)의 평균(85개)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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