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룩스 영국 대사의 소프트 파워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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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입력 2023-02-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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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한국에서 두 번째 근무하고 있다. 첫 번째 한국 근무 때는 1등 서기관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크룩스 대사는 평양에서 대사로 3년을 근무하고 작년에 두 번째로 한국에 왔다. 북한에서 오래 근무하며 한국말을 익힌 외국인들은 북한 억양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그의 억양은 완전히 서울식이다.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출신인 자신의 영어 발음에는 아일랜드어의 억양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크룩스 대사는 지난주 한국 언론인 공무원 교수 등이 회원으로 있는 ‘영시를 사랑하는 모임’(English Poetry Lovers·회장 신연숙 서울신문 전 논설실장)에서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시 세계’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히니의 시 8편을 소개했다.

크룩스 대사는 한국인들의 영시 공부 모임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쓰며 강연했다. [사진=황호택]

북아일랜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히니는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크룩스 대사는 “히니 시인과 나는 북아일랜드 농촌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은 우리 집에서 30㎞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히니는 가톨릭 교도이고 아일랜드 국적이다. 크룩스 대사는 신교도이고 영국 국적이다. 북아일랜드의 최대도시인 벨파스트에는 가톨릭 아일랜드인과 신교도 영국인의 동네 사이에 장벽이나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다.
 
‘경계선의 다양성 인정하는 민족주의’
 

아일랜드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잔류했고 영국에 계속 속하기를 원하는 신교 주민과 독립을 주장하는 가톨릭 주민으로 쪼개져 극심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테러가 빈발했다. 1998년에야 벨파스트 평화협정이 타결됐지만 상당 기간 불안한 평화가 이어졌다.
크룩스 대사가 이날 소개한 히니의 시 ‘공개 편지’(Open Letter)는 1983년 펭귄 북이 현대 영시선집에 자신의 시를 포함한 것을 비난하면서 쓴 것이다. 히니는 이 시에서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낼까 말까 망설였다면서 ‘내 여권이 녹색이라는 것을 잘 생각해보라(영국 여권은 자주색). 나는 한번도 (영국)여왕을 위해 술잔을 들고 건배한 적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히니는 1993년 옥스퍼드 대학 강연을 통해 ‘공개 편지’라는 시에서 여권의 색깔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영국의 아일랜드에 살면서 영국과의 관계를 말소하려던 것이 아니라 경계선의 다양성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고 북쪽 관할구역 안에서 아일랜드인으로서 북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이해받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에게 그들 자신도 아일랜드적 요소 너머에 있다기보다 아일랜드적인 요소 안에 있다고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민족적 배타주의로 흐르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삶이 성숙된 민족의식이라는 뜻이리라.
크룩스 대사가 다룬 시 중에는 가족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네 살배기 동생의 장례식에 학교를 조퇴하고 참석한 ‘조퇴(Mid-term Break), 73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감자를 깎던 추억을 담은 ’정리(clearance), 농사일에 능숙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추종자(Follower)’ 등이었다.
‘비계(Scaffolding)’는 부부관계를 담은 시다. 집을 다 짓고 나서 비계를 철거하면 돌로 쌓은 단단하고 믿음직한 벽이 드러나는 것처럼, 그대여 당신과 나 사이에도 다리가 낡아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두려워 말라. 우리는 집을 다 지었기에 허물어뜨리는 것이니.
히니의 시에서 ‘비계’는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하는 시다. 크룩스 대사는 강연에서 “히니의 시는 감정 분출을 자제하고 물리적인 상황 표현만으로도 진실을 생생히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시의 리듬 운율 등 음악성도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크룩스 대사는 히니가 ‘두 대의 화물트럭’(Two Lorries)이라는 시에서 북아일랜드의 역사를 두 대의 화물트럭에 비유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한 대의 트럭은 고향 사투리를 쓰며 어머니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집적거린 석탄 배달부의 트럭이고 다른 한 대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며 버스 정류장을 날려버린 폭탄 테러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시의 해석을 놓고 크룩스 대사와 영시 모임 회원들 간에 간간 토론이 벌어졌다. 시는 애매모호성 난해성(難解性) 다의성(多義性) 같은 수사법을 쓰기 때문에 독자마다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크룩스 대사는 회원들이 이견을 제기하면 자주 “possibly(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넘어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관용과 희망을 노래한 희곡 ‘트로이에서의 치유(The Cure at Troy)’에서 생애에 한번은 열망하던 정의의 큰 물결이 밀려올 것이며 희망과 역사가 일치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는 아일랜드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애송시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아일랜드의 혈통을 지닌 사람이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등으로 많은 편이다.
 
북한은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
 
크룩스 대사는 한국과 북한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북한은 조용하고 한국은 시끄럽다. 한국은 활기차고 북한은 공포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 27개의 외국 대사관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8개국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 대사관에 책 옷 기념품 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지방으로 여행을 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외교관들이 신청을 하면 다 허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의 딸 김주애(9)의 이름과 나이도 북한에서는 한번도 공식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어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이름과 나이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에 재직 중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고 싶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야기의 맥락으로 봐서 두 개의 코리아를 비교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해 전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군사력은 세계 6위, 경제력은 세계 11위지만 소프트 파워 외교역량 지수는 19위였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군사적 강압, 경제제재 등 물리적 힘으로 표현되는 하드 파워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이끌리게 하는 힘을 나타낸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현대언어학 석사학위를 받은 크룩스 대사는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인도네시아어에 능통하다. 한국의 외교관들도 세계 무대에서 오피니언 리더 그룹의 모임에 나가 소프트 파워 외교를 수행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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