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이달 들어 채권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 순매도 흐름을 이어갔지만 지난달 금융당국이 채권 매입 등 기관투자자로서 역할을 촉구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같은 보험권 움직임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올해 보험사들의 채권 만기 및 콜옵션(조기상환권) 상환 규모가 5조원에 육박하는 데 이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저축성보험도 13조원에 달해 유동성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 1일부터 22일까지 채권을 1조5002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부터 12월을 제외하고 모두 순매도 흐름을 이어왔지만 최근 순매수로 다시 전환한 것이다. 통상 보험사들은 채권 매수로 자금을 굴렸지만 지난해 9월 6317억원, 10월 2조2319억원, 11월 3조5534억원, 올해 1월 3조4918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금융권은 지난달 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보험업계 CEO 간담회'에서 채권 매입 등을 당부한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원장은 당시 "보험업계는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장기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며 "올해도 일시적 유동성 부족에 따른 정상 기업의 부실화가 금융산업 내에서 촉발되지 않도록 회사별로 채권 매입 등 다양한 투자 방식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 역할을 다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매수 움직임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생명보험사들의 저축성 보험금 지급 규모가 여전한 데다, 보험권의 올해 채권 조기·만기 상환액 규모도 상당하다"며 "채권 매도만큼 유동성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는 방법도 있지만 상환 부담이 여전해 올해도 순매도 움직임이 쉽사리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과거 생보사 21곳이 판매한 저축성보험(이하 퇴직연금·연금저축 제외)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한 보험금은 총 12조8358억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보험권의 자본성 증권 조기·만기 상환 규모를 4조6278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추정치(2조1191억원)보다 2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며 각각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 한 해 순익과 맞먹는 규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에서 콜옵션은 거의 지켜지고 있으며 만기 도래액 역시 무조건 상환을 해야 하는 금액"이라며 "콜옵션을 하지 않고 금리를 올려 기한을 연장할 수 있지만 기존 금액을 미상환 한 채 관련 금액을 계속 안고 가는 것이라 유동성 우려가 여전하고 시장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환은 기존 자본성 증권을 상환하고 다시 채권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상환 자체에 자금 조달 리스크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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