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야기 하나 –경남 산청 수선사
스스로 ‘가드너(정원사)’라고 부르며 정원관리를 수행삼아 정진하는 스님을 만났다. 지리산 수선사에서 30년을 가꾼 조경으로 인하여 지역의 유명관광지가 되었고 입소문을 타고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소문대로 구석구석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듬지도 않고 칠도 하지 않은 비규격적인 모양의 나무다리 그리고 너와를 올린 천연덕스런 정자가 어우러진 연못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는 잔디 나무 꽃 자연석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가드너 스님과 차를 한잔 나누면서 그동안의 경험담도 들었다. 혹여 볼일이 있어 바깥으로 나가더라도 당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잡초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쌓인 풀일거리는 곱절로 힘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에는 앞쪽에 풀을 뽑으면서 지나가면 벌써 뒤쪽에서 풀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현재의 아담한 넓이가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정원면적의 최대치라고 했다. 풀을 뽑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으로 이어졌다.
정원이야기 둘 –충북 청주 마야사
청주 교외의 마야사는 새로 창건한 절이다. 어느 화가의 아틀리에를 인수했다. 기존 기본조경을 존중하면서 거기에 당신의 취향을 더하여 10여년 동안 정원을 가꾸었다. 주변 경험자에게 묻기도 하고 조경잡지도 정기구독하고 정원에 관한 책도 다수 읽고 좋은 정원이 있다고 하면 수시로 찾아 다녔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도량이 안정감을 더했다.
제일 큰일은 풀과의 전쟁이라고 했다. ‘풀 코스’를 완주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또 기존의 나무와 나무가 너무 가까워 서로에게 방해되면 과감하게 잘라냈다. 제갈공명의 ‘읍참마속’보다 더 가슴 아픈 ‘내 팔을 잘라내는’ 고통이 뒤따르더라고 했다. 작은 나무들은 어울릴 만한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옮기는 비용은 새로 나무를 사서 심는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닌 엄청난 지출을 요구했다. 이식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또 옮기다보면 죽는 경우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차라리 그대로 둔 것만 못한 시행착오도 숱하게 치렀다. 입구의 빽빽한 참나무 동산은 과감하게 솎아내고 등성이 부분의 큰 나무만 일렬로 남겼다. 무조건 있는 그대로 두는 보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큰 은행나무의 튼튼한 가지에는 그네의자를 매어 두었더니 어린아이와 함께 오는 젊은 엄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런저런 정원 가꾸기 체험을 모아놓은 책도 서너권 출간했다.
정원 이야기 셋 –전남 순천 선암사
올봄에는 매화구경도 못 가고 벚꽃놀이도 없이 보냈다. 봄 끝자락이지만 길을 나섰다. 순천지역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있는 오래 된 인연들과 ‘한국 제일의 사찰조경’이라는 선암사를 찾았다. 유명한 ‘선암매’ 고목들이 흙기와 담장을 따라 줄을 지어 선 채 연푸른 잎새를 달고서 우리를 맞이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매화를 대신한 ‘겹벚꽃’이 만개한 장관을 연출했다. 홑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고도 남는다. 이제 나이 탓인지 은은한 빛깔엔 무덤덤해지고 강렬한 색감이라야 몸이 겨우 반응을 한다. 겹벚꽃의 강렬함은 홑벚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찐한 감동을 주는 것은 큰 키를 가진 붉디 붉은 영산홍이다. 한 점의 잎도 없이 꽃을 가득 달고서 서 있다. 아래쪽 줄기와 가지에는 군더더기가 한 점도 없다. 그건 오랜 시간 동안 가지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부지런한 손길의 반영을 의미한다. 감동을 주는 일은 그냥 되는 게 없다. 무채색의 빛바랜 한옥 고택건물과 대비되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한동안 발길을 붙들어 맨다.
선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품은 칠전선원 뒤란의 돌로 만든 수곽이다. 4단으로 이어진 수곽과 수곽 사이에는 대나무 홈통을 따라 물과 물이 이어지며 흐른다. 진입부의 제법 긴 나무 홈통이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첫 번째 직육면체 수곽인 사각형 안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물을 떨군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는 둥근형으로 넓이와 높이가 차츰차츰 작아지면서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Z자 형태로 배치했다. 바닥에는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 혹은 타원형 막돌 몇 십개를 자연스럽게 깔았는데 하나하나가 모이면서 또 전체적으로 세월의 더께까지 더해지면서 고졸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일행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폰 사진을 담기에 분주하다. 멀리서 가까이서 가로와 세로로 돌려가면서 그리고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며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데 여념이 없다. 담장 너머 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물로 차를 우려낸다면 누구에게나 천상의 맛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맛도 물맛이지만 수곽의 전체적인 자연스런 뛰어난 조형미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차인들과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정원 이야기 넷 – 이름없는 옛 암자
호젓한 암자에서 스승과 제자가 단둘이 살았다. 어느 날 스승님이 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동안 눈에 거슬렸던 나무를 옮기자는 것이다. 열심히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정성을 다해 옮겼다. 며칠이 지났다. 뿌리를 내렸는지 차츰차츰 잎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승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저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면서 다시 옮기자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옮겼다. 얼마 후 시들시들 하던 나무는 결국 죽었다. 나무가 죽은 것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이제 힘든 삽질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며칠 후 또 곡괭이를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뛰어갔더니 이번에는 바위를 저쪽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헐!!!
정원 이야기 다섯-어느 가정집
어떤 책에서 읽었다. 은퇴한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일거리는 정원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했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라 유럽의 이야기다. 이유는 집안을 지키고 있는 안주인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도 필요한 내조를 받아가며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래나. 그러고보니 서로의 시야권 안에서 살면서도 심리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공존의 타협책이긴 하다. 아예 가출하여 공간을 달리하며 ‘자연인’처럼 농장주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제력과 체력이 받쳐줘야 하고 나름 조경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하는 오랜 준비작업이 필요한 영역인 까닭이다. 그리고 하루 3번의 끼니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이래저래 은퇴 후의 여유있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중노동 생활이 되기 십상이니 그것도 함부로 덤벼들 일은 아니라는 애정 어린 충고까지 덧붙였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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