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 강해야 영화가 산다."
영화 '현기증' '사이코' '39계단' 등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역사를 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빌런'은 관객을 홀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며 관객들을 영화 속 한가운데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에서도 '빌런'은 주요한 역할을 한다. 1편의 '장첸'(윤계상 분), '위성락'(진선규 분)이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2편 '강해상'(손석구 분)은 시리즈 속 '빌런'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빌런'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진 상황. 윤계상과 손석구의 뒤를 이어 배우 이준혁이 새로운 '빌런'으로 낙점됐다.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였어요. 어떤 직업이나 그런 고민을 겪잖아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강화도로 훌쩍 여행을 떠난 날이었어요. 갑작스레 마동석 선배에게 전화가 왔고 '이런 역할이 있으니 한번 해보겠느냐'고 했어요. 할리우드 배우가 연락을 다 주시다니! 하하하. 겁도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60일 지정생존자',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 이준혁은 무자비함은 기본, 지능적인 악랄함까지 더한 '범죄도시' 3대 빌런 '주성철' 역을 맡았다. 마약 범죄의 주동자로 서울 광역수사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며 수사에 혼선을 주는 인물이다.
"제가 느낀 '주성철'의 특징은 사회화가 잘되어 있다는 거예요. 앞선 시리즈의 빌런들이 사회화되지 못한 인물이 악행을 저지르는 느낌이었다면, '주성철'은 반대의 느낌이 드는 거죠. 아마 '주성철'은 인생에 실패가 없었던 사람일 거예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죠. 흥미로운 건 '주성철'이 마지막까지 플랜B를 만들어 두었다는 점이에요. 마지막까지도 '이길 거다'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재밌었어요."
이준혁은 '주성철' 캐릭터를 위해 20kg 이상 증량하고 목소리까지 변화시키며 새로운 '빌런',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주성철' 캐릭터를 위해 목소리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새롭게 만들고 싶었죠. 아마 팬들도 기존 제 목소리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 인상을 주고 싶었고 캐릭터와 몸집에 맞는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이상용 감독과 제작자이자 배우 마동석은 이준혁에게 체중 증량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왜 증량해야 하지?' 의문이었는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증량해야 마석도와 싸울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체중 증량을 해야 캐릭터가 더 자연스럽고 리얼할 거로 생각했어요."
증량하다 보니 더욱 욕심이 나기도 했다고. "120kg까지 키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덩치가 커지니까 호르몬 영향을 받는지 과거 제 모습과 다른 거친 에너지가 나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하게도요. 저는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선호하는데요. 몸을 키울 때는 'RRR' 같은 작품이 재밌더라고요. 진취적이고 강한 느낌의 작품들을 열심히 봤어요."
예민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캐릭터들을 소화해 왔던 그는 이번 '주성철' 역할을 연기하며 새로운 이면을 발견했다고 털어놓았다.
"크고 까매지니까 좋던데요? 하하하. 포스터 속 제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어쩌면 이게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4kg 우량아로 태어났거든요. 그동안 내가 나를 속인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성격도 조금 더 유해진 것 같았어요. 하하하."
3편은 두 명의 빌런이 등장한다.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과 마약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악당 '리키'(아오키 무네타카 분)다. 두 명의 빌런인 만큼 시선이 분산될 위험도가 높았던 것도 사실. 이준혁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경쟁해야죠. 영화 전체가 중요하니까요. 저는 총을, 아오키는 칼을 쓰면서 서로에게 주어진 액션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액션도 보니까요. '짬짜면' 같은 매력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범죄도시3'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모습도 있을까? 이준혁은 연기와 새로운 이미지를 요리에 비유해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제가 오래 활동했으니 새로움을 보여드리기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범죄도시3'를 통해 기존 모습과 다른 '주성철'을 보여드렸고 이준혁이라는 밥집에 새로운 메뉴 하나를 추가하게 된 거죠. '아, 이준혁에게도 이런 메뉴가 있었구나' 하실 거예요. 뭐 잘하는 한 가지가 있으면 그것만 해도 먹고살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메뉴 중 새로운 메뉴를 보여드린 거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흥미로운 글들을 발견했다. 이준혁의 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글들이었다. 팬들은 "로맨스 장르에 출연해달라"며 입을 모았다. 로맨스에 최적화된 외모와 눈빛,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로맨스 장르에 출연하지 않는 건 '죄'라고 했다.
"(팬들 반응을) 전해 듣기는 했었지만…. 하하하. 사실 로맨스가 참 어려운 연기인 건 맞아요. 멜로야말로 주인공이 가져가야 하는 부담감이 크거든요. 캐릭터가 너무 멋지다 보니 그런 역할을 소화할 때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죠. 제가 그런 역할들을 피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작사에서 용기를 내주실까요? 어렵겠죠 사실."
이준혁은 반려견 팝콘을 떠나보내고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모바일 게임과 동화책 '안녕 팝콘'을 만들었다.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2년간 일만 했어요. 시간을 보내면서도 추모할 시간이 없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가족을 돌보지 못한 느낌이 들었어요. 가수분들은 작사, 작곡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데 저는 그런 걸 할 수가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너무 우울해질 거 같았어요.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능동적으로 스테이지를 이겨나가는 모습이 제게도 도움이 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라는 매체를 선택하게 되었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제 작품 리뷰는 잘 못 읽어도 게임 리뷰는 다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많은 분이 반려견과의 이야기를 담아주시고 정말 호의적이었어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준혁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40대를 맞은 소감과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올해는 일단 '범죄도시3'가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소망이기도 하고요. 또 '마이클 조던: 라스트 댄스'라는 영화를 보니 긴 시간 고생하고 긴장하다가 딱 하루 풀어지며 샴페인을 터트리는데 그 마음이 참 궁금하더라고요. '범죄도시3'가 잘되면 형사 역을 맡은 '용국'(한규원 분), '강호'(최우준 분)와 '우리도 함께 해보자'고 했어요. 잘 못 마시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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