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정국 뇌관' 대한민국 교육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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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교수
입력 2023-08-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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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교수
[안상준 교수]


 
교육 현장에 쓰나미가 밀려온다. 한여름 무더위가 휘감은 거리에서 교원의 성난 목소리가 거리를 뒤덮는다. 대학가에는 소멸의 공포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며 교수들의 한숨과 체념이 하염없이 늘어진다. 느닷없이 수능 출제의 기조 변경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올 하반기는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아우성이 정치 이슈를 뒤덮고 내년 총선에 커다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 뚜렷하다.
 
기나긴 무더위를 보내고 맞는 9월은 새로운 시작이다. 각급 학교는 2학기를 맞고, 여의도에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한다. 그 출발점에 ‘9·4 교육공동체 회복의 날’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교원 6만여 명이 연가와 재량휴업을 활용하여 7월 18일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 49재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세종시교육감(최교진)과 서울시교육감(조희연)은 공개적으로 지지와 동참 의사를 표명하며 학교 구성원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9·4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예의 그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경고와 협박을 표명했다. 지금까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교육 당국과 수사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고, 교실 붕괴 방지를 위하여 거리에서 외치는 교원의 요청에 대한 교육부와 정치권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교육 당국의 경고와 협박에도 타오르는 교원의 적극적인 투쟁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권의 재정립이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 회복이기도 하고, 교사의 가르칠 권리 회복이기도 하다. 교실은 가르치는 자(교사)와 배우는 자(학생)의 교감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질서는 구성원의 언어적 소통과 공동체적 협력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도덕적·지적 권위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도전받지 않아야 하며, 학생의 배울 권리와 인격적 대우를 받은 권리는 훼손될 수 없다.
한때 학교는 체벌과 폭력의 현장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항변하며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몰리는 학생들은 적지 않다. 경제적 풍요, 교사의 자질 향상, 교육 환경 개선 등 교육 여건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가운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교육 재정의 획기적인 확충과 사립학교 교원의 인건비 지출 등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대표적인 성과다.
하지만 제반 요소의 향상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여전히 ‘승자 독식의 교육관’에 눌려 신음하는 중이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일류 대학 진학이 사회적 성취로 이어지는 등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대학 입시 성과로 교사의 능력을 측정하는 사회에서 상호 소통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는 과도한 반응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교사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가르치는 본업’에 전념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애정을 갖고 가르치는지,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지’ 학생들은 직감한다. 그리고 대다수 교사에게는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학생을 관리하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성적과 사무를 처리하는 업무에 지쳐 있다. 최선을 다해 가르치기 위하여 교안 작성에 공을 들이고 학생과 교감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사든 교수든 학생들과 지적 대화를 나누고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질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기는 매일반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의 최우선 과제는 학생 관리를 포함한 교사의 행정업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교사가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르치는 능력 향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9월이면 대학가에는 개강의 신선한 바람이 분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보는 학생들의 면면에는 무더위 속에 영근 모습이 비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대학가를 휘감는 소멸의 바람이 이번 학기부터는 더욱 스산하게 불어닥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 바람의 진원지는 교육부라는 점에서 저항의 맞바람 또한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예비 선정된 15개 사업단은 10월 6일까지 본 선정을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하고, 본 선정 결과는 10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10월이면 수시 입학 전형이 시작되고 경쟁률이 드러나는 때라는 점에서 발표 시기가 상당히 미묘하게 다가온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선정이 ‘지역과 대학이 탄탄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동반 성장을 하도록 지역과 연계한 대학의 혁신을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표방한다. 그러나 대학들은 본 사업이 오히려 대학의 무한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비수도권의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업은 선정 기준으로 제시된 학과 간, 대학과 지역‧산업 간, 국내외 간 벽 허물기를 제시한다. ‘지역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경쟁, 교육 수요자 의견 중시, 교육‧연구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 촉진,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자연적 요인과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대학 쏠림이라는 사회적 요인으로 소멸의 위기를 맞은 비수도권 대학을 살리는 대책으로 다시 경쟁 구도를 조성하여 살아남으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본질적으로 대학 구조조정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6월 하순에 발표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대학의 단위로서 학과 또는 학부의 설치 원칙을 철폐한다. 이제 대학은 융합학과(전공) 신설이나 자유전공 운영, 학생 통합 선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조직을 자유롭게 구성·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제부터 대학에 무자비한 학생 유치 경쟁, 전공 존치 경쟁, 재원 분배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고장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 교육과 연구를 비롯한 대학의 본원적 기능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학교 밖 수업도 허용하고 있다. 이제 학교 밖에서 이동수업과 협동수업이 가능해진다. 특히 협동수업은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현장 실무지식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산업체·연구기관 등과 맺은 협약에 따라 해당 기관이 보유한 시설·장비·인력을 활용하여 학교 밖 장소에서 실시하며, 학점 인정 범위는 졸업학점 중 4분의 1까지 확대된다.
이는 대학이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고등교육기관보다는 기업을 위한 취업 준비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교육부는 대학 자율이라는 허울을 쓰고 국가 재정으로 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한 통로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 대학에서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기능은 사치다. 나아가 취업과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초과학, 인문학, 예술 분야는 대학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게 뻔하다.
고등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큰 그림 없이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대학이라는 미명 아래 펼쳐진다. 지역의 사립대나 중소 도시의 국립대가 소멸의 늪으로 빠지는 상황을 대학의 구성원과 지역 주민은 그대로 두고 볼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11월 16일에 치를 수능은 교육 현장에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언급 이후 신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킬러 문항 배제를 공식적으로 단언했다. 신임 원장은 교사 출신으로서 장학관을 거쳐 교육부 관료를 지낸 바 있다.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임무를 띠고 평가원장으로 낙점된 인물로 볼 수 있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 난이도는 어떻게 변할까? 교육부의 바람대로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실 적정한 난이도라는 표현이 매우 모호하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면 당연히 난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예측은 이미 재수생의증가를 불러왔다. 대학에 다니는 이른바 반수생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고학력자들이 의대 진학의 꿈을 다시 지피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한다. 그렇다면 고3 학생들 관점에서 난데없이 경쟁자가 늘어난 셈이다. 당락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통령을 원망할 요인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예년처럼 불수능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출제에 동원된 모든 인원은 조사와 수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출제진으로 참가한 교수와 교사가 초유의 상황에서 적정한 난이도를 어떻게 상정할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예상된다. 그런 예상을 한다면 출제진 확보 자체가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훌륭한 출제진 구성은 수능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1요소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가원의 고충이 그 어느 때보다 크리라고 여겨진다. 어떤 경우든 이번 수능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난제가 되었고, 결과에 따라 휘발성 강한 이슈로 터질 우려가 있다.
 
교원의 분노, 대학의 소멸 우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 2023년 하반기 교육 현장과 정치권을 강타하리라고 예상되는 세 가지 요인을 검토하면서 교육 문제의 근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성적지상주의와 입시, 대학 서열화, 지방과 중앙의 격차 심화,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 등 교육 현장의 병폐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지친 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무한경쟁에 던지기 싫고 무한경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버겁다는 청년의 아우성이 궁극적으로 국가 소멸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무한경쟁의 해소이고 입시에 종속된 교육의 해방에 있다.
이제 교육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대안적 사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쟁 교육에서 전인 교육으로 교육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방영된 ‘EBS 세계의 교육’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관리체계가 통제시스템에서 자율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국가의 의무로서 효율성 원칙에서 보충성 원칙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투여되는 공공재정의 비율이 높지 않다. 특히 고등교육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고도 대학 혁신을 외치는 모양새가 무모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글로컬대학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과시적 성과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함께 이마를 맞대야 할 때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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