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법정 통역인 선발을 위한 인증시험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실시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법정통역인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법정통역인과 국선변호인, 피고인이 면담 일정을 잡기가 힘들다는 점 외에도 법정통역인 후보자 수 부족, 검증절차의 미비 등이 문제로 꼽힌다. 급증하는 외국인 유입에 대비해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법원에 상주하는 통역인을 두고 법원에서 직접 이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국인 유입 급증하는데…통역인 후보자 턱없이 부족
5일 법무부와 경찰청이 수집한 '최근 5년간 체류 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2만4656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코로나19 발발로 2020년 203만6075명, 2021년 195만6781명으로 점차 줄었다가 지난해 224만5912명으로 1년 새 15% 증가했다. 외국인 피의자도 2019년 3만9249명에서 2021년 3만2470명으로 감소한 뒤 지난해 3만4511명으로 늘어났다.
외국인 유입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피의자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외국인 피고인과 면담하기 위해 국선변호인들 입장에서 법정통역인은 필수적이다. 사소한 단어의 미묘한 번역 차이만으로도 유무죄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법정 통·번역인 인증평가 결과 배출된 법정통역인 후보자는 인증 122명, 준인증 107명으로 총 229명에 그쳤다. '인증' 통역·번역인은 인증평가에서 정한 합격기준을 충족한 사람을, '준인증'은 합격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해당 언어에 숙달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법원 관계자는 "영어, 중국어 등 특정 언어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통역인 후보자가 부족하고 특히 소수 언어의 통역인 후보자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마저도 대부분의 통역인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소재 법원에는 필요한 언어 통역인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정 통역 후보자의 능력·수준에 대한 검증절차가 부실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번역의 정확성 △통번역인의 중립성 △법률용어의 이해도 등 실제 재판에서 통역 후 이들의 통역 능력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英 국가 비용 '번역서비스' 제공…美 '법원 소속' 통역관 운영
영국은 국가가 통역인의 능력이나 통역 수준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공판 준비단계에서부터 국가 비용으로 서류의 번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은 법원이 통역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법원 소속 공무원으로 통역관을 두고 있다.
호주는 '국립 통번역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2900명 이상의 통역인들이 등록돼 160개 이상의 언어를 통역하는데 호주 전역에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법원 창구에서 다자간 전화통역으로 주로 활용되는데, 재판과정이나 재판 외 법률상담 때도 전화통역, 현장통역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국선변호인들은 외국인 피고인의 제대로 된 방어권 보장을 위해선 '전담 통역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국선전담 변호사는 "지금처럼 생업과 법정통역인 업무를 병행하는 식이 아닌, 주요 언어들에 대해서는 상주하는 전담 통역인을 법원에 두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외국인 피의자가 수사절차에서는 수사기관이 선정한 통역인의 통역을 받고, 공소가 제기될 경우 법원이 새롭게 통역인을 선정하고 있는데, 전담 통역인이 수사부터 재판 단계까지 같은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면 충실한 방어권 보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법정통역인 활동 경험이 있는 정현우 통역사는 "현재 법원 통역 건수보다 수사기관 조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통역 건수가 몇 배로 많고 시급, 수당 또한 훨씬 많다"며 "법원 전담 통역인 제도를 둔다면 급여를 어느 수준까지 책정해 줄 수 있는지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