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중국 하얼빈역.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도착했다. 일본인 옷차림으로 환영 인파 속에 있던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발사했다. 3발의 총탄이 이토의 가슴팍에 꽂혔다. 의거 후 안 의사는 권총을 내던지고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들며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4주년 기념식이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열리는 행사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 식사, 기념사, ‘안중근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박 장관은 기념사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렸고 한국 침략의 부당함과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고 평가했다.
박 장관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 평화와 민주주의는 결코 허투루 이뤄지지 않았다”며 “안 의사와 같은 애국선열이 흘린 피와 땀 위에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함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안 의사를 비롯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중국·일본·대만·러시아 등 관련국과 긴밀히 협력해 안 의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시는 그날까지 성심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아직 돌아오지 못한 다른 독립유공자분들을 고국으로 모시는 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미국에 안장된 정두옥 지사의 유해를 다음 달 한국으로 봉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보훈부는 독립운동가들을 최고의 품격으로 예우하고 숭고한 헌신이 깃든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국민들과 함께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학교 설립 및 의병 활동을 펼쳤다. 1909년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를 저격한 뒤 뤼순감옥에 갇혔다.
심문과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했고, 조선 독립과 동양 평화를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안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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