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통해 자신을 각인시켜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톱스타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기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주경제는 이들이 명장면과 명대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또 어떤 비하인드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걸어온 연예계 생활의 발자취를 되돌아봅니다.-by건희-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은 전두광으로 변신해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대사를 강렬하게 표현해냈다. 극 초반 이태신(정우성 분)과 기싸움을 펼치며 "와 그렇습니까?"라고 외치는 모습은 섬뜩함을 안길 정도다.
황정민은 마치 전 전 대통령에 실제 빙의한 듯한 연기를 펼치며 '서울의 봄'의 흥행을 이끌었다. 자신이 왜 영화계에서 '믿고 쓰는 배우'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당시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조연으로 출연해 인상을 남겼는데, 사실 그의 영화 첫 데뷔작은 1990년 개봉한 영화 '장군의 아들'(감독 임권택)이었다. 그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과거 '장군의 아들'에서 우미관 지배인 역을 맡아 받은 돈 100만원으로 청소년 극단 빚을 갚았다고 털어놨다.
황정민은 계원예고 재학 당시 대학 입시를 위한 학력고사를 포기하고 친구들과 청소년 극단을 만든 특이한 이력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 극단은 황정민의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고, 재수를 통해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에 90학번으로 입학한다. 대학 동기로는 방송인 신동엽, 배우 류승룡, 안재욱, 최성국, 임원희 등이 있다.
황정민은 대학 졸업 후 대학로에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연극계에 데뷔한 그는 오랜기간 무대에서 활동하며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이런 노력들은 향후 그가 '대배우'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았을 뿐인데"
그렇게 연기 실력을 갈고닦았던 황정민에게 '운명'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 바로 '칸의 여왕' 전도연을 만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찍은 것이다. 황정민도 "너(전도연)랑 연기한 것은 나한테 기적 같은 일이었어"라고 지난 2005년 열린 제26회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말할 정도였다.
지난 2005년 개봉한 '너는 내 운명'은 2002년 벌어진 '여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AIDS) 사건'을 모티브로 순진한 농촌 총각 김석중(황정민 분)과 다방 아가씨 전은하(전도연 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두 배우의 명품 연기로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며 약 305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후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의 최대 수혜자였다. '너는 내 운명'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입지를 공고히 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았을 뿐인데"라는 명언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된다. 당시 황정민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 공을 스태프들에게 돌리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황정민은 연기 자체만으로도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했다. 실제 시골에서 본 듯한 순박한 시골 청년의 모습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도 바칠 만큼 헌신적인 열연을 펼치는 장면 장면이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즈(AIDS)에 걸린 채 윤락 행위를 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힌 전도연과의 면회 장면에서 쉰 목소리로 "나 괜찮아 사랑해 은하야"라며 울먹이는 장면은 희대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황정민은 이에 대해 "양잿물을 마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몇 날 며칠 소리를 지르며 목을 상하게 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어이 브라더", "드루와"
'너는 내 운명' 속 순박했던 농촌 청년은 영화 '신세계'에서는 껄렁껄렁한 조선족 출신 조폭 정청으로 분한다. 첫 모습부터 의형제 같은 사이인 이자성(이정재 분)을 향해 "어이 브라더"를 외치며 슬리퍼를 신고 강렬하게 등장한 그는 또 하나의 유행어를 탄생시킨다.
"드루와~드루와~" 조직 간 내부 파벌 싸움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건달의 가오를 버릴 수 없었던 마지막 발악이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는 황정민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컷이다.
또 '신세계'에서 황정민의 차진 욕도 '신세계' 흥행에 일조했다. 그는 '욕'에 대한 물음에 "친구끼리 친하면 자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쩌면 각종 영화에서 보여줬던 맛깔나는 욕은 친구들과 장난에서 비롯된 내공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바야흐로 황정민의 전성시대다. 지난 2014년 12월 개봉한 '국제시장'과 2015년 8월 공개된 '베테랑'이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며 '쌍천만 배우'가 됐다. 8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황정민은 '국제시장'에서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맏형이자 가장인 윤덕수 역을 맡았다. 1950년대 6·25전쟁 이후 힘들었던 삶을 대변했다.
독일 파독 광부, 베트남전 참전 등을 겪은 그가 나이가 들어 홀로 방에서 아버지 사진을 보고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독백하며 흐느끼는 장면은 국제시장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베테랑'에서는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2팀 서도철로 분한 황정민은 마약을 일삼는 악의 축인 재벌 조태오(유아인 분)세력에게 "니들 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라면서 절대 기죽지 않았다.
특히 조태오의 편에 선 동료 형사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말을 던지며 돈이라는 물질적 유혹과 경찰로서 신념 사이 갈등을 잘 표현해냈다.
이 대사는 사실 지난해 7월 별세한 배우 강수연의 단골 멘트였다. 강수연의 말을 류승완 감독이 기록해뒀다가 영화에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탄 들렸어?"
'베테랑'에서 마약범을 잡던 황정민은 마약 공급책의 우두머리로 변신한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잔인무도한 목사 전요환을 연기했다. "사탄 들렸어?"라며 자신을 절대자로 취급하며 부하들을 복종시키는 모습은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사탄 들렸어?"가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유행어가 됐다. 어느 상황에서든 유쾌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된 것이다. 황정민도 "사탄 들렸어?"를 잘 활용했다.
지난해 황정민은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정해인과 수상자로 나섰다. 정해인의 "선배님(황정민)이 말씀하시는 톤이 수리남이 생각났다"는 농담에 황정민은 "사탄 들렸어?"라고 응수해 관중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황정민이 이토록 많은 명대사를 유행어로 만든 배경에는 그의 숨은 노력이 가미됐기에 가능했다. 황정민이 앞으로 어떤 배역을 맡아도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황정민 필모그래피
△데뷔-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주요 출연작
2001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3년 영화 '바람난 가족'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
2005년 영화 '너는 내 운명'
2005년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6년 영화 '사생결단'
2010년 영화 '부당거래'
2012년 영화 '댄싱퀸'
2013년 영화 '신세계'
2014년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2014년 영화 '국제시장'
2015년 영화 '베테랑'
2016년 영화 '검사외전'
2016년 영화 '곡성'
2016년 영화 '아수라'
2018년 영화 '공작'
2020년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
2023년 영화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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