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은행권을 향해 '공공재'로 날을 세웠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종노릇', '갑질' 등의 표현으로 다시 압박했고,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융당국은 이런 비판을 이어받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횡재세 논란에 대해 "입법 형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우려가 있다"면서도 "결국 우리 업계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연말 금융회사들은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맞거나, 수조원대 상생금융 방안을 내놔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어려운 경기 속 나홀로 수조원대 이익을 편취한 은행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응당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횡재세에 준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횡재세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협박(?)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정부는 은행 독과점 구조를 완화할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대통령실과 내각에서 내부적으로 은행 독점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금융당국의 압박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이런 구조개편 논의를 대통령실에서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릴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실제 당국 고위 관계자들은 당시 이런 정부의 논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렇듯 반시장적이고 일방향적인 관치는 올해 내내 금융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 연초 한국은행(한은) 기준금리 인상에도 금융당국의 "과도한 금리인상을 자제하라"는 압박에 은행들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이는 곧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반대로 최근 한은의 금리 동결에도 은행들은 앞다퉈 금리를 올렸다. 대출이 너무 불어난 탓에 당국이 관리를 요구하면서다.
이렇듯 통화당국의 정책 결정보다 금융당국의 말 한마디가 시장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면서 금융권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당초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산분리 완화'를 중심으로 금융규제 혁신을 핵심 의제로 제안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신산업 발굴, 전업주의 규제 타파 등을 언급하면서 현 금융산업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낡은 규제를 타파해 향후 국격에 맞는 유니버설 뱅크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국은 이런 규제 완화 논의에 대해서도 "당분간 기대하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사들의 고민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중요하지 않다. 당국의 눈치를 빠르게 살피고, 최대한 그들의 의중에서 벗어나지 않게 '알아서' 잘 따라가야 한다. 이런 형국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2023년 한국의 금융 시계가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