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짓누르는 상속세] 업력 짧고 성장세 높을수록 稅부담↑… 중소·중견기업 '사다리' 빼앗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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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남라다 기자
입력 2024-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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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 가치 상승에 따라 재원 부담↑...한미약품, 이종 간 합병 선택

  • 셀트리온 상속세만 5조원 넘을 듯...오너일가 경영권 약화 '우려'

  • 하림 '오너 2세' 김준영 편법 증여 의혹에 승계 작업 지연도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왼쪽부터 우오현 SM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각사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왼쪽부터), 우오현 SM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각사]
상속세 리스크는 수십조 원대 자산가인 대기업 총수 일가만의 문제로 치부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상속세를 내지 못해 쓰러지는 중소·중견기업이 적지 않다. 막대한 상속세가 중소기업들의 ‘성장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해묵은 상속세 문제가 최근 다시 이슈로 부각한 것은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사태 때문이다. 5000억원대 상속세가 발단이 됐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 중 5위권에 드는 한미약품그룹이 지난 18일 OCI그룹과 통합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는 대한민국 재계 역사상 이례적인 ‘이종(異種) 통합'이다. OCI그룹의 지주회사인 OCI홀딩스가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구주·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7703억원에 인수하고 임주현 사장과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식이다.
 
한미그룹의 이 같은 결정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2020년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이후 오너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약 5400억원에 달했다.
 
‘상속세 폭탄’ 때문에 ‘승계 시계’를 늦춘 기업들도 많다.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과 하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중 ‘셀러리맨의 신화’로 통하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주식 재산은 9조9475억원(지난달 15일 기준)이다. 상속세는 5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를 납부하면 오너일가의 경영권 약화를 불러올 소지가 다분하다. 
 
앞서 서 회장은 지난해 10월 그룹 합병 발표 자리에서 “‘상속·증여세를 내면 승계할 방법이 없다”면서 상속세 때문에 어차피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아주경제]
하림그룹은 세금 문제로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린 기업으로 꼽힌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현재 하림(지분율 1.23%), 팜스코(0.19%), 하림지주(21.1%) 등 상장 계열사 3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 계산한 3곳의 지분 가치는 1736억원에 달한다. 오너일가가 물어야 할 상속액은 1041억6000만원으로 예상된다.

하림은 지난 2012년 김준영 이사에게 올품 지분 100%를 증여하는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불거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48억8800만원을 부과받았다. 현재 하림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등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SM그룹은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우기원 삼라마이다스(SM)그룹 부분장(부사장)의 모친인 김혜란 전 삼라마이다스 이사가 지난 16일 별세하면서 당장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상속 절차는 올해 3월 전 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법 상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내 상속세를 신고한 뒤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이사는 삼라 지분 12.31%를 비롯해 SM스틸 3.24%, 동아건설산업 5.68%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우 부사장은 상속 절차가 마무리되면 2대 주주에 올라 있는 지주사 격인 삼라마이다스는 물론, 또 다른 지배구조 최정점에 해당하는 삼라 지분도 확보하게 돼 그룹 내에서 후계자로서 위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상속세 폭탄으로 중소기업의 가업승계가 막히는 것을 막고자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승계 상속인 우선매수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매수제도는 주식·채권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중소·중견기업 상속인에게 물납증권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문제는 신청 요건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공제 혹은 우선매수권 혜택을 받으려면 중소기업 혹은 직전 3년 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이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2세인 상속인은 해당 법인의 대표이사 겸 최대주주여야 하며, 고인인 피상속인이 해당 법인의 경영에 10년 이상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은 “과도한 상속·증여세는 중소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과 경험을 없애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이라며 “기업 승계 활성화가 중소기업을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길임을 경영계 스스로가 열심히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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