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이번 총선을 '민생경제' 경연장으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2-29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역시 정치는 경제보다 상위에 있다. 정치의 결정판인 선거판에서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제1기 대선 캠페인도 외부의 적인 중국 때리기를 통해서 미국 총인구의 60%에 달하는 백인들의 실업 문제와 애국심을 자극한 것이었다. 금년 재집권을 노리는 트럼프의 제2기 대선 구호도 제1기 때 구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 중국 상품에 60%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중국 때리기 시즌 2도 시즌 1의 재탕이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대선이나 의원 선출 방식은 완벽하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역사 및 정치적 배경이 다른 만큼 선거 제도와 관행도 다르지만 우리가 참고할 점은 있다. 미국의 정당은 강제적 당론이 없고 당론 위배를 이유로 한 의원 제재도 없다. 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당에서 특정 후보를 공천·지정하지 않고 유권자들이 예비선거(primary)를 통해서 후보군을 압축하고 본 선거에서 최종 선출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보들은 예비선거와 본 선거에서 TV토론 등을 통해서 전국적인 사안에 대한 정치적 역량과 소신을 비교, 검증받는다.
 
총선을 불과 40여 일 앞둔 한국은 어떤가. 중앙당이 특정 기준을 적용해서 공천 인물을 선발한다. 공천된 후보들은 긴 이력과 당성에 적합한 이미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운다. 국민들은 정작 중요한 민생이나 국가의 중요 사안에 대한 후보자의 식견이나 소신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없다. 국회는 입법과 예산 심사, 그리고 행정부 견제를 통해서 국정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우리 헌법 제24조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고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임을 선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10조와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자기를 선출해준 지역을 위함과 동시에 국민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이다. 첫째, '지역에 대한 기여'는 입법과 행정부의 정책과 연계함으로써 주민들의 생활 향상과 경제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의원들이 지역구를 위해서 국가 예산 사업을 유치하고 성과를 홍보하는 것은 '내 논에 물 대는 것’으로 경쟁을 유발하는 등 바람직하지 않다. 선심성 프로젝트 공약이 너무 빈번하게 나온다. 전국 각지에 통행량이 별로 없는 도로들이 많고 행사가 끝나면 방치되는 시설들이 널려 있다. 둘째, '국민의 행복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국적 차원’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 38개 회원국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평균 67점인데(2023년 유엔 세계행복리포트, 2020~2022 평균) 한국인들은 60점을 주고 있다. 1등인 핀란드(78점)에는 한참 뒤진 공동 33위로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를 겨우 제친 정도이다.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이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유엔 리포트(2018~2020년 평균)에서도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58점(공동 34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가 낮은 까닭은 무엇일까.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 경쟁이 심하다 등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민생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민생경제 회복, 즉 국민들이 잘살기 위한 필요조건은 생활과 여가를 위한 소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의 보장이다. 미국 컨설팅사 머서(Mercer)는 2023년 세계 주요 도시 생활비 랭킹 조사에서 주택, 교통, 음식, 의류, 가정소비재 등 200개 품목의 물가를 합산해서 도시별 순위를 매기고 있다. 서울은 세계 227개 도시 중 생활비가 16번째로 비싼 도시로 랭크된 반면 삶의 질 순위에서는 80위로 처졌다. 서울보다 생활비가 싼 런던(17위)은 삶의 질 44위, 도쿄(생활비 19위)는 삶의 질이 51위이다. 이코노미스트(2023년 11월)도 세계 173개 도시에 대하여 200개 상품과 서비스 품목의 물가를 조사하였는데 뉴욕을 기준(100점)으로 서울은 81점으로 비싼 순서로 15위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서울은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홍콩에 이은 비싼 도시 3위로서 역시 도쿄보다 물가가 비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위와(Yuwa) 인구연구소는 1인당 GDP 대비 18세까지 양육비는 한국이 7.79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조사 대상국 16개 가운데 한국, 중국(6.3배)에 이어 이탈리아(6.28배), 영국(5.25배), 뉴질랜드(4.55배)가 5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들에서 조사 시점, 물가 추계 방식과 환율 문제 등은 따져 볼 게 있겠으나 한국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것을 애써 부인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국민들의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치열한 민생경제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 야당은 민생정책에 대해 묻고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와 여당은 응답하면서 정책의 공방이 이어지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총선 상황은 경제보다는 정치적 공방과 이미지 경쟁을 하고 있다. 시장을 돌면서 악수한다고 해서 민생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민생경제에 대한 정책 역량과 소신을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2024년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민생경제 회복이 정책 방향의 하나로 강조되고 있다.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물가 및 서민생활 안정, 소상공인 지원 등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꺼냈고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민생 문제는 정부·여당만의 과제가 아니다. 곧 후보 공천의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 무대가 펼쳐지면 본격적인 민생 경제정책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선심성 프로젝트 공약을 지역에서 남발하는 것을 지양하여야 한다. 국가 예산과 온 국민의 부담이 되는 사업을 특정 지역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공공재의 사적 이용으로 문제가 있고 공약 경쟁의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둘째, 후보들은 제도의 개혁에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하여야 한다. 꼭 해야 하는 개혁이면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판단을 받아야 한다. 독과점적 시장 분할보다 유효 경쟁을 촉진해 가격을 낮추어야 한다. 셋째, 지역 언론들은 후보들 간 정책 토론장을 마련하고 유권자들에게 알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악순환되고 있다. 인구 유지를 위해서는 남녀 2명이 평균적으로 자녀 2명을 낳아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이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0.7에 불과하다. 양육비는 비싸고 여성의 양육 기회비용이 높은 것이 주된 이유인데 출산장려금이나 양육비를 조금 지원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물가 안정과 민생 회복을 위해 여야 모두 노력하여야 한다. 이번 총선부터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치열한 경연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