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국가안보 '첨단산업기술 무역 경쟁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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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입력 2024-06-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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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그립은 도무지 느슨해질 기미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작되고 바이든 대통령이 배턴 터치를 한 미국의 중국 고립화 정치는 11월 두 전·현직 대통령이 벌이는 리턴매치에서 누가 이기든지 간에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 전기자동차, 태양광 패널, 철강제품 등이 현재 진행 중인 대중 제재 품목이지만 바이오와 AI 등 리스트는 얼마든지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원-민주당원을 가릴 것 없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대중 압박 정치 캠페인을 버릴 사람은 없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도 관세반격 등 보복을 천명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서 물러서는 것은 미·중 경제전쟁의 패배이고 시진핑 정권의 몰락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수의 진을 치고 항전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누가 승자가 될까.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이 미국의 포위망에 갇혀 타격을 입으면서도 살아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버팀목은 세계 최대 인구대국으로서의 두터운 소비층과 미국 등 해외 유학과 국내에서 길러낸 연구개발 인력, 동원 가능한 막대한 자본, 그리고 연관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화웨이이다. 미국이 2019년 화웨이 회장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멍완저우 부회장을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기소하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화웨이 고립화 정책은 화웨이의 해외 매출을 반토막내는 등 피해를 입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성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 내수밖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화웨이이지만 최근 매출과 수익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국의 주요 장비와 부품 조달이 차단된 화웨이는 필사적으로 외국산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연구개발을 강화하였다. 중요한 반도체 칩은 세계 3위의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에서 조달하고 필요한 부품은 허블(Hubble)이라는 투자전문 자회사의 자국 내 공급망 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해결한다. 미국 등의 압박이 중국을 질식시키기보다는 혁신이라는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미국의 중국 봉쇄는 중국의 저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국의 대중 고립화 정책에 유럽도 동참하고 있지만 각국의 사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도 한계가 있다. 전기차 보급이 많은 노르웨이는 7월부터 시작되는 EU 주도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관세 부과정책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영국은 중국 자본의 영국 원전건설 등 인프라 참여와 배터리 공장 투자 추진 등 중국에 대한 의존이 높은 상황으로 탈중국 대열에 온전히 합류하기 쉽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은 생산 및 무역 의존도가 높은 중국으로부터 단기간에 벗어나기는 어렵다. 최근 탈퇴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 오래다. 세계 첨단기술 무역의 제한은 세계적으로 매년 1~7조 달러, 즉 세계 GDP의 1~7%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분석들이 있다. 중국을 왕따시키고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중국 고립화의 비용을 미국 등도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의 장기적 공성전은 우리에게 무역과 안보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경제협력의 가장 중요한 핵심축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2위 수출·수입국이고 지정학적으로 얽힌 이웃국가이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미국의 대중 통제에 대해서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북한이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군사적 지원 등을 한다는 요지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하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압박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대만의 대 중국 강경파인 라이칭더가 총통으로 취임한 이후 중국은 대만 격리 작전 시사 등 대만을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하고 있다. 대만인들은 대만반도체제조공사(TSMC)가 중국의 대만 위협에서 실제 전쟁을 방지할 중요한 보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를 파괴하지 않았듯이 중국이 TSMC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대만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네덜란드 ASML은 TSMC 공장의 핵심부품을 원격 파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이 황금알을 낳는 TSMC의 배를 가르는 대만 침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들이다.
 
산업과 무역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중요하다는 주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산업과 무역의 국제 네트워크가 전쟁을 예방한다는 무역의 전쟁예방설이 있다. 여러 나라에 얽히고설킨 경제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것은 침략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에게 손해를 주기 때문이다. 산업과 무역에서 세계 톱 텐(10)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둘째는 무역의 군수물자 수송 루트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미국 본토인 하와이를 공격한 것도 미국이 일본의 군수물자인 석유와 철 스크랩의 수입을 차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가 한국을 압박하고 중국이 한국의 대미 연대를 비난하는 것은 군사외교 측면 이외에도 우리가 중요한 산업을 가지고 있고 무역 강국이기 때문이다.
 
무역은 안보를 위해 그만큼 중요하다. 무역 자체가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무역을 통해 우리와 세계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원과 핵심부품의 공급망 확보, 기술과 인력의 쟁탈전도 무역안보의 확장과 닿아 있다. 우리에게 무역과 안전보장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산업기술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질서 있는 무역을 해나가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혼돈의 세계정세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국가 과제가 되고 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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