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정부 곳간이 텅 비었다. 세금은 부족하게 걷혔는데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상반기 중 재정 신속 집행을 역대 최대 규모로 추진한 결과다.
반면 가계와 기업은 지갑을 닫아 여윳돈이 늘었다. 가계는 집을 사는 대신 여유자금을 주식·채권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1분기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정부의 순자금조달은 50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25조6000억원) 대비 두 배 수준이자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다. 지출이 수입보다 더 크게 증가하면서 전 분기 순자금운용(8조6000억원)에서 순자금조달로 전환됐다.
정부가 1분기 중 국채 발행과 한은 대출로 당겨 쓴 자금은 78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또한 역대 최대치다. 국채 발행은 40조3000억원, 금융기관 차입은 2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기관 차입은 한은에서 대출해 준 돈으로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가 펑크난 상태에서 경기 회복을 위해 약자 복지, 일자리, 사회간접자본(SOC) 중심으로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상반기 신속 집행률은 역대 최고(중앙재정 기준 65%) 수준이다. 올해 1~5월 국세 수입은 법인세가 덜 걷히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조1000억원(5.7%) 감소했다.
정진우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세수는 들어오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당겨 선집행하다 보니 자금 조달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1분기에 주로 마이너스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총선도 있고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 지원이 시급했던 상황이라 정부가 연초부터 재정 지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와 비금융법인(기업), 일반정부를 포함한 국내 전체 순자금운용 규모는 26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21조4000억원) 대비 확대됐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액은 전 분기 29조8000억원에서 77조6000억원으로 여유자금이 47조8000억원 증가했다. 소득보다 지출이 더 크게 늘어났지만 아파트 분양, 가계의 건축물 순취득 등 가계 실물 투자가 감소한 영향이다. 순자금운용은 금융자산 거래액(자금운용)에서 금융부채 거래액(자금조달)을 뺀 값으로 경제주체가 보유한 여윳돈을 뜻한다.
정 팀장은 "가계는 기본적으로 실물 투자를 얼마큼 하느냐가 가계 부문 운용 조달 규모로 결정되는데 1분기는 분양 물량이 적어 실물 투자 자금이 흘러나가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여유자금이 늘어나면서 대부분 금융 상품 운용 규모도 증가했다. 1분기 상여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예금(18조4000억원→58조6000억)이 급증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채권(7조3000억원→12조4000억원), 증권 및 펀드(-13조1000억원→2조9000억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자산 중에선 예금 비중이 46.4%로 가장 많았다.
기업은 1분기 순자금조달이 1조6000억원으로 전 분기(6조9000억원)보다 줄었다. 금융기관 예치금, 채권 운용 등을 중심으로 자금 운용액(28조4000억원)이 늘고 상거래 신용으로 자금 조달액(29조9000억원)이 줄면서 순자금조달이 축소됐다.
정 팀장은 "당기순이익이 증가한 반면 유·무형 자산에 대한 투자가 지체되면서 여유 자금이 늘었다"며 "국내 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로 회사채 발행 여건이 개선돼 채권을 순발행했지만 상거래 신용 감소가 이를 상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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