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의 제4조는 이른바 ‘자동개입 조항’이었다.
“쌍방중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 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 푸틴이 체결한 이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63년 전인 1961년 7월 6일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재현한 것이다. 이 조약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북한의 김일성 내각 수상이 모스크바에서 서명한 조약이다. 이 조약의 제1조에는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1961년에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상호원조 조약과 이번에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의 차이점은, 이번에 체결한 조약에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의 국내법에 준하여’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이 추가돼있다는 점뿐이다. 유엔헌장 제51조는 유엔 회원국인 국가에 무력 공격이 이뤄질 경우 이에 대해 집단 자위권을 포함한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를 규정한 조항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체결을 발표하자 우리 외교부는 24일 미국 일본 정부와 공동으로 ‘러·북 협력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 계기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을 통해 강조된 러·북 파트너십의 발전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준수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잔인한 침략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을 지원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중대한 우려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러 전략동반자 조약 체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응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6월 20일 “우리는 관련 보도에 주목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쌍방 협력에 관한 일이므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발을 뺐다. 이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은 각 당사자들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며, 각 당사자들은 이를 위해 건설적인 노력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린젠 대변인의 논평은 북·러의 동반자 조약 체결에 대해 중국은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반응이었다.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미 뉴욕타임스 6월 23일자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조선이 체결한 조약은, 중국 입장에서는 이 지역의 대립과 갈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와 북한의 조약 체결은 중국에게는 새로운 두통거리(Russia and North Korea pact is a new headache for China)’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그렇게 전했다.
중국 정부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북·러 조약에 대해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여준 것은 현재 중국이 서있는 외교적 입지 때문이다. 푸틴은 2년 전 2022년 2월 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무제한(無上限 · No limits)’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시진핑과 무제한 협력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불과 20일 만인 2월 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국은 그때부터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를 받게 됐다. 이후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군사적 소통’을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이 가하는 제재압력에 숨통을 열어놓았다. 그런데 7개월 만에 김정은이 푸틴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63년 전의 ‘조소 우호협조 상호원조 조약’을 재현하기로 하자 미국과 유럽이 가해오는 외교적, 경제적 제재압력을 완화해 보려던 시진핑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에 참가한 리창(李强)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재확인했다. 중국으로서는 미·중 간의 정치적, 경제적인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과 협력을 다짐하는 정상 간 공동선언을 해놓은 흐름을 불과 한 달 뒤인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푸틴과 김정은 사이에 63년 전의 자동개입 조항을 포함하는 북·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는 성명이 발표된 사실이 내심 달갑지 않은 것이다.
중국에게는 미·중 관계와 중·러 관계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 GDP의 24%를 차지하고 총무역액의 20%를 담당하는 한·중·일 3개국 협력 관계도 못지않게 중요한 상황이다. 더구나 한·중·일 3개국과 동남아 12개국이 참여하는 RCEP(Regional Comprehensive Partnership)에서 총 GDP의 83%, APEC(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참여국가들 총 GDP의 40%를 담당하는 한·중·일 3개국 협력은 중국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협력 관계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현재 동북아의 역학 구조를 북·중·러와 한·미·일 사이의 신냉전이라고 단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1990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붕괴하기 이전 이념을 바탕으로 한 냉전(Cold War) 체제와 현재의 이른바 ‘신냉전(New Cold War)’ 체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한·중·일 3개국 협력 체제의 비중이 과거보다 현저히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현재의 중·러 협력 관계에는 과거 냉전 시대의 이념적 공통점도 결여돼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중·러 협력관계에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도미노 압력에 저항하는 시진핑과 푸틴 사이에 반(反)민주주의 전제주의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과거 소련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극좌적 이데올로기 공유는 없는 상황이다.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중국공산당이 “소련의 오늘은 중국공산당의 내일”이라면서 소련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카피하던 시절에 태어나 성장한 배경을 갖고 있다. 푸틴은 KGB 출신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붕괴를 보면서 레닌과 스탈린에 의한 전제주의 통치를 비난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특히 레닌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문제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현재의 중·러 협력은 과거 냉전 시대에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중·소 협력시대의 체제와는 기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중 갈등관계의 하부구조인 한·중관계라는 양자(兩者)관계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과거 냉전시대에는 없던 한·중·일 3개국 협력관계라는 3자 관계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한·중 관계의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한·중 관계는 정치외교적으로는 갈등 관계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 보완의 관계라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중·일 3국협력은 현재 정상회의를 중심으로, 21개의 장관급 회의와 70개 이상의 각종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하는 미·중 관계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중 관계를 제로섬(Zero Sum) 관계로 보지 않으려는 시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최근 한·중·일·미·러 외교일지 >
2022년 2월 4일 시진핑·푸틴 베이징 선언 ‘무제한 협력’ 확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8월 18일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2023년 11월 15일 바이든 · 시진핑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군사적 소통’ 확인
2024년 5월 27일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 동북아 평화 유지 합의
2024년 6월 19일 푸틴 · 김정은 평양 정상회담. 자동개입 조항 포함 전략적 동반자 관계 복원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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