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정치9단] 동물·식물 뛰어넘은 '오물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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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제 기자
입력 2024-08-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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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형사 고발 검토"…與 "우리도 다쳤다"

  • 과열된 정쟁 원인…'민생 국회'로 거듭나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20230904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2023.09.04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우리 국회에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다. 어떤 때는 국회의원 간에 몸싸움을 벌이고 전기톱·쇠지렛대(빠루)를 들고 서로를 위협해 '동물 국회'라 불렸다. 또 어떤 때는 법안 처리율이 심각하게 낮아 운동성이 없다는 의미로 '식물 국회'라는 오명이 붙었다. 전부 좋은 별명은 아니다.

개원 2개월이 지나는 제22대 국회는 안 좋은 국회의 모습을 모두 답습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보기 힘들었던 의원 난투극이 재연됐고, 정쟁 법안만 처리하느라 민생 법안은 뒷전으로 미뤄 법안 처리율 역시 저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대치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지금 국회의 모습은 동물도 식물도 아닌 '오물'이 되고 있다.
 
선진 국회 되나 했더니…폭력 사태 다시 발생
2007년 12월 14일 오후 국회 본회장을 점거 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기톱으로 문을 연 국회 경위들의 도움으로 입장한 신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7년 12월 14일 오후 국회 본회장을 점거 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기톱으로 문을 연 국회 경위들의 도움으로 입장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흔하게 벌어졌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이른바 'BBK 수사검사 탄핵소추안'과 '이명박 특검법' 처리를 놓고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부딪쳤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날부터 본회의장을 점거해 쇠사슬 등으로 모든 출입문을 틀어막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측은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 항의했고, 사무처에서 전기톱을 동원해 쇠사슬을 모두 잘랐다.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한나라당에서 준비한 의자와 확성기를 집어던졌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서로 목을 조르고, 주먹을 주고받는 등 집단 난투극까지 벌였다. 

약 1년 뒤인 2008년 12월 18일에도 국회에서 대규모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 여야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정 문제를 놓고 맞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을 막아서자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뚫기 위해 대형 망치로 문을 뜯어내고 소화전을 끌어다 물대포까지 쐈다.

국회는 이 같은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2012년 5월 2일 제18대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처음에는 처벌 규정이 없었으나, 수년간 법을 다듬은 끝에 처벌 규정이 담겼다. 이 법을 위반할 시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했다. 정치권에선 '선진 국회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자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다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1차 청문회를 열었다. 당연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국민의힘이 선택한 항의 방식은 연좌 농성이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실에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법치 파괴 억지 청문 철회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청문회 개의를 반대했고, 농성까지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만남에 응하지 않았다.

청문회가 개의한 뒤에도 여당의 항의는 이어졌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청문회가 시작한 뒤 회의장에 입장하는 과정에서 여당 측으로부터 물리적 충돌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의장 진입을 막은 신원 불명의 국민의힘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있었다"며 "밀치고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내 오른쪽 뺨에 누군가가 위력을 가했다. 허리를 다쳤고, 오른쪽 발 전체가 굉장히 아프다"고 전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선진화법은 다중의 위력, 폭력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며 "형사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리 당 고동진 의원도 다쳤다"며 "법사위원장이 밟고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맞불을 놨다.
 
법안 처리율 점차 하락…강행 후 거부 반복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관계자가 본회의장 문을 닫고 있다. 21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3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22대 국회에선 식물 국회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16대 국회에서 70%를 기록했던 법안 처리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추락했다. 앞서 법안 처리율은 △17대 57% △18대 54% △19대 44% △20대 36% △21대 35%를 기록했다. 

직전 21대 국회는 여야의 정쟁으로 얼룩졌는데, 22대 국회 역시 정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12일까지 22대 국회에 접수된 의안은 총 2721개다. 이 중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7개에 불과하다. 7개 법안 중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은 단 하나도 없다.

지난달 4일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왔다. 같은 달 25일 재표결을 했지만, 재적의원 3분의2 동의를 얻지 못해 폐기됐다. 이외에도 '방송4법'과 '노란봉투법', '전 국민 25만원 지급법' 역시 여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8월 임시국회 동안은 정쟁 법안의 강행을 멈춰 달라고 민주당에 호소 중이지만, 민주당은 강행한 법안들 모두가 민생 법안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여소야대' 형국이 이어지는 동안은 야당이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흐름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를 앞둔 지난 1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와 노란봉투법 본회의 상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야당 규탄대회는 본회의 때마다 거듭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를 앞둔 지난 1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와 '노란봉투법' 본회의 상정 등을 규탄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의 야당 규탄대회는 본회의 때마다 거듭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이 같은 22대 국회의 추태는 과열된 정쟁이 원인이다. 출범부터 여소야대로 출발한 윤석열 정부가 야당과 먼저 대화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과반 의석을 야당이 가진 야당이 정부·여당에 힘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협치를 했다면 어땠을까.

22대 국회는 지난 6월 5일 개원했다. 이제 개원한 지 두 달 남짓 지났다. 앞으로 46개월이 더 남았다. 남은 기간 정쟁만 끝없이 반복하면 정말 '오물 국회'라는 별명을 갖게 될지 모른다.

국민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고통받는 중이라는 것은 여야와 정부 모두 공감하고 있다. 서로만 바라보며 힘 자랑과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 힘든 국민들을 돌아보고 민생 법안을 강구하는 '민생 국회'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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