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미국 맨해튼, 5월 호주 시드니, 6월 브루클린, 7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이달 인천에서 발생한 벤츠 화재까지 올해 배터리 사고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전기차 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을 시작으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중이다. 완성차 기업들은 급증한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각종 안전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전기차 시장침체를 우려해 대규모 할인에 나섰다. 지난해까지 공급망 경쟁이 한창이었던 배터리 기업들은 BMS(배터리관리시스템)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22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배터리 안전진단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BMS사업을 본격화했다.
현대차그룹도 BMS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전기차 배터리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고객에게 문자로 알리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기아도 지난 21일부터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의 배터리 안전성 확보 투자가 진행 중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 21일 배터리 R&D(연구개발)를 발전시키는 프로젝트에 4300만 달러(약 57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비용은 배터리 안전성 개선에 집중 투자될 계획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 작동 방식 자체에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 중국과 일본의 배터리 기업들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선 지난해 9월 1회 충전에 1200㎞가 주행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공개한 도요타는 당초 계획한 2027년 양산을 앞당길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역시 도요타보다는 한발 빨리 전고체 양산에 돌입한다는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협력 혁신 플랫폼(CASIP) 가동이 한창이다. 특히 이번 벤츠 전기차 화재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가 중국의 배터리 기업 파라시스라는 게 공개되면서 떠오른 중국산 배터리 논란을 조기에 잠식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업계는 국내 배터리 3사를 포함해 CATL, BYD, 파나소닉 등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안정성 확보 경쟁에 돌입하면서 R&D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수백억~수천억원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벤츠 전기차 화재에 따른 전기차 판매 축소를 우려해 대규모 할인 행사에 돌입했다. 아우디 코리아는 e-tron 55 콰트로의 가격을 29% 이상, 다른 모델의 경우 24.5% 인하했다. BMW 코리아는 iX xDrive 50 EV 세단의 가격을 12.9%, i7 xDrive 60의 가격을 12.7% 낮췄다.
벤츠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비슷한 수준에 있는 타 브랜드로 확산할 수 있어 다소 무리한 마케팅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 측면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이미 1~7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13.4% 감소하는 등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안전성 논란으로 자동차 가격 인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 입장에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한 BMS 등 R&D 비용에 더해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판매량 감소, 대규모 할인 프로모션 등에 따른 배터리 가격 인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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