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TV토론에서 100분간 혈투를 벌였다. 두 사람은 낙태권, 국경 봉쇄와 이민자, 경제 침체와 물가 등 주요 쟁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해리스가 토론 내내 상대를 자극하며 미끼를 던졌고 트럼프는 이를 덥석 물며 흥분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등 예상 밖의 모습이 관측됐다. 다만 수많은 쟁점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음에도 초박빙의 선거 구도를 바꿀 ‘한 방’은 없었다는 평가도 나오면서 2차 토론 가능성에 이목이 쏠린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10일(이하 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열린 토론에서 악수를 나눈 뒤 모두발언 없이 곧바로 토론에 돌입했다.
해리스는 이날 토론에서 경제 및 물가와 관련해 “난 중산층 자녀로 자랐고 이 무대에서 미국의 중산층과 노동자를 실제로 도울 계획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내세웠다. 그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대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감세”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물가가 더 높아지는 것은 중국과 수년간 우리에게서 훔쳐 간 모든 나라들”이라며 “나는 (재임 기간) 인플레이션이 없었다”며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경제를 파괴했다”고 날을 세웠다.
두 후보는 이민, 낙태권 등을 두고도 충돌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수백만명의 불법 입국을 허용했다며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는 성공할 기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테로이드를 맞은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해리스는 “지금 우리 국가에 있는 사람들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하는데 트럼프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해리스는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슈인 낙태권을 놓고 강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전역에서 임신과 유산에 대해 모니터링에 들어갈 것”이라며 “신체에 대한 선택권을 정부가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내 견해는 중요하지 않다”며 주 차원에서 결정한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해리스, 꺼진 마이크에 발언하자 트럼프 ‘발끈’
발언권을 둘러싼 두 후보의 치열한 신경전도 이어졌다. 트럼프가 발언하는 동안 해리스가 꺼진 마이크에 대고 무엇인가를 말했고, 이에 트럼프는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지 않느냐”며 발언을 멈추는 등 다소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해리스는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밀월관계를 거론하며 “독재자들이 당신이 대통령이 되길 응원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들이 아첨과 호의로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공세를 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단 있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헝가리 총리가 말하기를 3년 전 세계가 파탄에 빠지지 않은 이유로 트럼프 덕분이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해리스가 던진 미끼 물어”…결정타 없어 2차 토론 가능성도
외신은 대체로 해리스가 판정승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CNN은 “해리스가 첫 번째이자 어쩌면 유일할 수 있는 화요일밤의 105분 간 토론의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의 화를 돋웠고, 트럼프는 미끼를 다 물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이날 한 민주당 컨설턴트의 발언을 인용 “빌 클린턴 이후 기억할 수 있는 민주당 대선 후보의 최고 성적”이라며 “(트럼프) 그는 흔들리고 그녀는 정말 강해 보인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리스가 트럼프와의 첫 대결에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만든 듯 보인다”고 했고, AP통신은 “해리스는 바이든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트럼프에 대항했다”고 평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쟁점은 많았지만 11월의 초박빙 선거의 역학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결정타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친(親)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이번 토론에서 해리스에 더해 진행자 2명까지 합해 3명과 티격태격해야 했다면서 편파적인 진행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언론들도 해리스의 판정승에 손을 들어줬다. BBC는 이날 토론이 해리스가 트럼프를 자극하면 트럼프가 정책 메시지 대신 자신의 과거 행동과 발언을 광범위하게 변호하는 식으로 전개됐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해리스가 자신만의 공격을 구사하며 점점 자신감을 얻었고, 트럼프는 종종 분노를 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봤고, 가디언 역시 “해리스가 트럼프와의 토론에서 승리한 듯 보인다”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이번 토론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던 목적을 일부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토론 성격상 해리스의 정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토론 직후 해리스 캠프의 젠 오말리 딜런 선거대책위원장이 해리스 부통령이 토론을 장악했다면서도 두 번째 토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한 것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트럼프는 토론 후 이례적으로 스핀룸을 찾아 “해리스가 2차 토론을 즉각 제안한 것은 그녀가 심각하게 패배했기 때문”이라며 “(2차 토론 제안에 대해)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스핀룸은 토론 이후에 관련 정치인들이 언론과 만나는 공간이다.
경합주 7개 ‘초박빙’…토론 직후 여론조사서 해리스 긍정평가 늘어
해리스와 트럼프는 7개 경합주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11일 선거분석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분석한 결과 해리스와 트럼프는 각각 208명과 219명을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기준으로 해리스와 트럼프가 당선을 확정 짓는 ‘매직넘버(270명)’까지 추가로 필요한 선거인단은 각각 62명과 51명이다.미국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우 두 후보 모두 47.6%로 팽팽한 대결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격전지인 조지아(0.3% 우세), 노스캐롤라이나(0.1%), 애리조나(1.6%)에서는 트럼프가, 위스콘신(1.5%), 미시간(1.2%), 네바다(0.6%)에서는 해리스가 근소한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CNN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SSRS가 이날 토론회 직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리스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45%, 부정 평가 비율은 44%로 나타났다. 이는 토론회 전 긍정 평가 비율이 39%였던 것에 비해 해리스에 대한 여론이 개선된 것이다. 반면 트럼프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39%, 부정 평가 비율은 51%로 토론회 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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