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불황이 길어지며 수도권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대형사와 지방 사업장이 대부분인 중소 건설사들 간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분양 시장이 회복 추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쌓여가며 상당수 지방 건설사들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5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부도 발생한 건설업체(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 건설업체)는 종합건설사 7곳, 전문건설사 15곳 등 총 22곳인데, 이 중 지방이 19곳으로 전체 86%에 달한다. 부도 처리된 지방 건설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1~8월) 5곳이었는데 올 들어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지방 중소 건설업체의 경우 미분양 여파와 줄어든 신규 수주로 인해 자금난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광주·전남 중견 건설사 남광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4월과 6월에는 한국건설과 남양건설, 연초에는 해광건설과 거송건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방 분양시장 부진이 이어지며 중소·지방 건설사가 쓰러지는 모습이다. 올해 1~7월 누적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는 35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306건 대비 16% 증가했다. 반면 올해 1~7월 누적 종합건설사 신규 등록은 36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25건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건설경기 불황 장기화로 자금난을 겪던 건설사들이 더 버티지 못하고 자진 폐업한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체(종합·전문) 가운데 한계기업은 수도권은 전년 대비 0.7%P 증가한 반면, 비수도권의 한계기업은 같은 기간 2.2%P 늘며 3배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상태가 3년 연속 지속됐음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8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 대비 3.0p 떨어진 69.2를 기록했는데 서울은 91.8, 지방은 평균 62.9로 격차가 컸다. CBSI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며 100을 넘으면 반대를 뜻한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지수(92.3)가 전월 대비 상승해 90선을 유지했는데, 중견기업지수(60.6)와 중소기업지수(54.9)는 전월보다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건설경기 부진으로 인한 물량 감소, 부동산 PF 위기의 장기화,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7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만6038가구로, 6월(1만4856가구)에 비해 8% 늘었다.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해 7월(9041가구) 이후 1년째 증가세다.
준공 후 미분양은 건설사와 시행사의 자금 부담으로 이어져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중소 건설사가 많은 지방은 부동산 경기 악화로 미분양이 심화하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 중 수도권은 2900가구(18%)에 그쳤지만 지방은 1만3138가구(82%)로 한 달 새 1173가구 증가했다.
특히 전남 지역은 악성 미분양이 전월 대비 53.8% 늘어난 2502가구에 달했다. 이밖에 대구(1778가구), 경기(1757가구), 경남(1753가구), 제주(1369가구), 부산(1352가구), 경북(1239가구) 등도 악성 미분양 물량이 많았다.
분양 전망도 양극화가 커졌다. 주택산업연구원의 9월 아파트 분양전망지수에 따르면 전국 평균은 전월 대비 6.5포인트(p) 오른 93.2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한 달 새 13.6p 오른 117.9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방 등 비수도권은 대부분 지역이 100 이하로 전망됐다. 지역별로 부산(90.9→81.0), 전남(73.3→64.3), 경북(93.8→86.7), 경남(93.8→86.7), 광주(70.6→66.7) 등에서 분양 전망이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 차원에서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면서 지방 시행사, 건설업체들이 줄도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PF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PF 부실사업장 처리가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건설업체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신용도가 낮아 기업 운영을 위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P-CBO(프라이머리 자산담보부 증권)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건설기업에 대한 보증은 전체 보증 건수의 10%인 183건에 불과하다.
임기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경기의 장기 침체로 인해 건설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기업 구제를 위한 정부의 금융 지원은 크게 확대되고 있지 않다"며 "건설경기 장기 침체로 부도와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중소 건설사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여러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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