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②
미국 시장의 7배 되는 '전기차 제국'을 건설한 중국
자동차의 원조 미국과 자동차 강국 유럽에 '중국산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등장했다.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유럽도 중국산 전기차에 현재 10%인 관세에 최고 36.3%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과 유럽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그간 중국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연간 3005만대 팔리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지만 전 세계 자동차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봉(鳳)'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이젠 전기차에서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두려운 경계 대상이 되고 있다.
2024년 7월까지 누계로 보면 중국 전기차시장은 565만대로 미국 82만대, 유럽 163만대와 비교하면 각각 미국 시장의 7배, 유럽 시장의 4배나 되는 규모다. 특히 미국의 테슬라는 세계 최대인 연산 95만대 규모의 기가팩토리를 미국이 아닌 중국 상하이에 지었을 정도다.
미국과 유럽의 고율관세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기차메이커들의 주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2023년 총 181만대 수준이었고 이 중 유럽 비중은 74만대로 40.8%지만 중국의 2023년 전기차 총판매대수 950만대의 7.8%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지역 비중은 1%에 불과하다.
미국은 중국이 내수시장의 공급과잉을 해외로 돌리기 때문에 중국산 전기차를 제재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의 정치적 레토릭이 강한 '중국산 전기차 공급과잉론'보다는 후진국 중국의 전기차가 '자동차의 원조 할매집' 미국과 '세계적인 명차가 즐비한 유럽'이 고율의 폭탄관세를 퍼부어야 할 정도로 두려운 존재가 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전기차,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를 잡았다
중국은 지금 세계 전기차시장에서 68%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세계 1위국이다. 2024년 7월 누계 기준으로 세계 1위 전기차 메이커는 24.3% 점유율 가진 중국의 BYD다. 2위가 13.0%인 미국의 테슬라, 3위가 7.7%인 중국의 지리자동차, 4위가 6.4%인 중국의 상하이자동차, 5위가 4.3%인 독일의 폭스바겐이다. 세계 전기차 톱5 중 3개가 중국 회사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의 원가 비중은 회사별로, 차종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2023년 기준 현대차 사례로 보면 35~61%이고 평균이 46%이다. 그리고 이 중 양극재 비중이 47%, 음극재가 12%, 분리막이 14%, 전해액이 12%, 조립 등 기타 원가가 15%이다.
배터리가 전기차의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고 배터리는 4대 소재의 원가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결정된다. 중국은 지금 전 세계 배터리시장에서 65%의 점유율을 가진 세계 1위이고 2위인 한국의 21%와는 3배 이상 격차가 있다. 일본은 한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9% 선에 그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배터리 4대 소재 시장에서 중국의 시장 장악력이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포함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개도국 원자재 시장에 진출해 전기차산업에 필요한 소재에서 막강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하였다. 중국은 세계 배터리 4대 소재 시장에서 양극재 60%, 음극재 84%, 전해액 72%, 분리막 68%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어느 나라도 추월할 수 없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생태계를 장악해 전기차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흑연(100%), 코발트(74%), 리튬(65%), 니켈(17%) 등 핵심 광물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배터리 제조, 그에 따른 배터리의 제조원가 경쟁력이 중국 전기차산업의 최강 원가경쟁력의 비밀이다.
살을 주고 뼈를 얻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전략'
중국이 세계 1위의 전기차 제국으로 올라선 데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 전략이 있었다. 육참골단은 작은 손실을 보는 대신에 큰 승리를 거둔다는 전략이다. 전기차의 불모지 중국이 세계 전기차 1위기업인 미국의 테슬라를 중국 상하이로 유치한 것이다.
테슬라의 상하이 기가팩토리는 상하이 푸둥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미·중 패권 전쟁이 불붙은 2018년 12월에 착공하여 12개월 만인 2019년 12월 완공하였다. 중국 내 외국 자동차 회사는 모두 중국 기업과 합작인 반면 테슬라만 100% 독자 외상 기업의 특혜를 부여했다.
미·중의 경제전쟁으로 테슬라 상하이 공장은 크게 타격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테슬라의 중국 영업은 마치 애플의 중국사업처럼 번성했고 테슬라가 전기차에서 세계 1위를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019년 15만대 생산 규모로 시작한 상하이 공장은 2023년 말 95만대 규모로 확장했고 테슬라의 전 세계 공장 중 최대 규모다.
미·중의 경제전쟁 와중에서 세계 최고의 전기차 경쟁력을 가진 테슬라가 진입하면 테슬라가 중국 시장을 잠식할 것이 분명한데도 중국이 테슬라를 유치한 데는 중국의 숨겨진 전략이 있었다. 바로 세계 1위 기업인 테슬라의 공급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테슬라 상하이공장에 납품하기 위한 세계 일류의 전기차 부품공급망이 중국에 들어오게 되고, 중국 전기차 제조회사들도 자연스럽게 테슬라의 공급망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중국 전기차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게 만든 것이다
미국 반도체 보조금의 4.4배에 달하는 '화끈한 보조금 지원'
2019년 기준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대에 불과했던 중국이 전기차를 대량 소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 정부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일찍부터 전기차 산업 육성에 올인했다.
중국은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자동차 구매보조금, 세금감면, 인프라투자, 연구개발, 정부구매 등 각종 명목의 정부보조금으로 총 2308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2308억 달러는 미국의 Chips법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이 527억 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 반도체 보조금의 4.4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미국이 IRA법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이 7500달러 수준인데 이를 받기 위해 각국 전기차 회사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대당 전기차 보조금으로 이미 2018년부터 대당 1만3860달러를 지급했고 2021년까지 미국보다 높은 8538달러를 지급했다. 중국은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세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자 보조금을 2023년에는 4764달러까지 낮추었다
한국, 전기차 '보복관세 전쟁의 불똥'을 조심해야
이미 미국의 테슬라를 넘어서는 실력에 강한 생태계까지 갖추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를 관세로만 잡기에는 중국산 전기차의 경쟁력이 너무 세졌다. 미국과 유럽의 관세 압박은 단기적인 견제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원가경쟁력과 가성비+가심비로 잡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중국의 전기차는 이미 미국과 유럽이 쉽게 추월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했는데 이를 정확히 보지 않고 감정만 앞세우면 실수한다.
그리고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신산업에서 '1등 하는 법'을 알았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보여주었듯이 먼저 규제 샌드박스와 정부보조금으로 완전경쟁시장을 형성한다. 다음으로 생태계의 확보와 자율적 구조조정으로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무기로 해외시장으로 진출해 세계 시장 장악을 노리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중국과 미국, 유럽의 전기차 '보복관세 전쟁의 불똥'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배터리에서 중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고 미국의 한국 배터리 의존도가 높지만 문제는 한국은 '중국 배터리 원자재의 볼모'라는 점이다.
한국은 배터리의 핵심인 양극재와 음극재에서 대중 소재 의존도가 80-90%에 달한다. 미국·유럽과의 관계 악화로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중국이 보복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강한 자원수출통제를 실시하게 되면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의 전기차 전쟁, 중국과 유럽의 전기차 전쟁에서 한국은 공급망 관리에 전력투구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대중 소재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전략에 아끼지 말고 돈을 써야 한다. 중국의 소재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대미 전기차와 배터리에서 무역흑자는 한순간에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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