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가시화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미리 대비하여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 이것이 금융안정정책의 목표이다. 이 목표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의 것이다. 2년 전 실리콘밸리은행(SVB: Silicon Valley Bank)이 위기에 봉착하자 미국 정부는 예금보호한도를 늘려 뱅크런을 방지한 사례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예금보험공사법 개정안은 1) 보험한도를 1억으로 늘리는 것과 2)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안정계정을 두자는 것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되었던 것이다.
우선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것부터 살펴보자. 은행은 예금자의 단기예금을 받아서 대출자의 중장기 사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만기전환기능을 본질로 한다. 많은 예금자가 동시에 자금 인출을 시도하면 은행은 그 지불요구에 응할 수 없어 지급불능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정금액의 예금을 지급보장한다면 은행의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필립 딥비그 교수의 1982년 논문이 이를 지적한 것이다. 두 교수와 함께 같은 상을 받은 벤 버냉키는 1930년대 대공황을 분석한 결과 은행의 부도 또는 지급불능이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기 때문에 은행 부도를 막고 자금중개를 원활히 해야 금융위기가 실물로 옮겨가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금보호제도는 금융안정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5000만원 보호한도에서 은행권 보호예금자 비율은 97.8%다. 현재 5000만원 넘게 넣어둔 예금자는 10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보호한도를 상향할 경우 편익은 소수(예금자의 2.2%)가 누리게 되지만, 금융사의 예금보험료율 인상 부담은 전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면 예금보험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금융안정에 기여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예금보호가 보험원리에 의해 작동하므로 그 원리가 작동하게 하면 된다. 각 금융권별로 사고율에 따라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고율이 높으므로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보험보장 금액을 줄이면 된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기본 처방이다. 각 금융권역이 자신의 리스크 감내한도와 예금비용을 고려하여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타 권역이 그 리스크를 지는 것은 금융안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저축은행은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이 전체 업종의 50%를 차지했다. 2021년 1%대였던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56%로 상승했다. 이것이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이다. 최근 감독당국이 부실한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을 위해 검사에 착수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예금보호한도를 증액하는 것은 예보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되는 것이다. 금융안정을 위해 도입된 예금보호제도가 금융안정을 해치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권역별로 예금보호한도를 다르게 두고 보험료율을 다르게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호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사고율은 과거의 것인데 현재의 저축은행이 그 부담을 지는 게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보험은 본디 과거의 사고율을 반영하여 보험료를 책정한다는 그 기본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이제 금융안정계정 도입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안정은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정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목표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겪은 후 한국은행법 제1조에 제2항을 신설해 한국은행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의 책무를, 예금보험공사(예보) 역시 예금자보호법 제1조 규정에 따라 금융 제도의 안정성 유지 책무를 준 이유이다. 현행법상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기능은 한국은행에 있다. 위기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사전적으로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기존 예보의 자금지원은 부실(우려) 금융기관에 한정되는데, 금융안정계정을 통한 자금지원은 부실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에 지원하는 것이다. “유동성이 경색되거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인정되기만 하면 금융위가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판단을 누가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다. 금융안정계정은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정비된 도드-프랭크법의 채무보증프로그램을 벤치마크한 것으로 도드-프랭크법 제1105조에 규정돼 있다. 이 채무보증프로그램을 적용하려면 먼저 재무부 장관이 연방예금보험공사와 연준에 현 상태에서 이 프로그램을 동원해야 할 정도의 유동성 위기가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도록 주문한 후, 두 기구의 이사회가 각각 3분의 2의 의결로 유동성 위기가 있다는 점을 서면으로 결의해야 한다. 이 경우 채무보증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는 있으나 이는 자본 확충에는 사용할 수 없고, 또 예금보험기금으로부터의 차입은 금지된다. 재무부 장관은 대통령과의 협의를 거쳐 채무보증의 상한을 정한다. 이런 결정은 모두 미 의회에 통보된다. 이 조치의 핵심은 금융당국의 판단에 대해 재무부와 의회 등의 견제를 받기 위한 거버넌스(민관협력, 협치)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불명확하다. 여기서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 과정의 ‘서별관회의’가 떠오른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관료가 별실의 회의에서 결정한 것의 예이다. 경제부처간 협의는 필요하지만 그 근거가 무엇이고 어떠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인지, 그리고 여기에 투입되는 국민의 혈세는 얼마인지 등을 살펴보는 거버넌스를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향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금융권역은 금융위의 감독을 받지 않는 새마을금고 등이 될 것인데 이에 대해 유동성 지원을 담당할 한국은행의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21대 국회에서 필자가 이런 점을 지적하여 한국은행이 비은행금융기관 금융정보 공유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2023년 10월 30일)을 통해 저축은행, 신협, 농협, 수협, 산림조합 관련 정보공유 확대 및 정책 공조를 위한 모니터링 기능 강화에 상호 합의하였고 사전 판단에 대한 절차와 모니터링이 강화되었다.
금융안정 장치의 정비는 필요하다. 위기 이전에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더욱 좋다. 기재부 장관, 예보 사장, 한은 총재, 금융감독기구의 수장들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가칭 금융안정협의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여기서 위기 판단과 대응 방식을 논의하고 그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과 같은 거버넌스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책임과 국회의 감시도 분명히 해야 한다. 금산법에 동일하게 규정돼 있는 금융안정기금은 금융안정계정으로 통합해야 한다.
서브프라임 위기 극복과정에서 벤 버냉키 당시 연준의장은 금융위기 때 은행이 망하면 자금줄 경색이 발생하여 실물경제로 급격히 전이되어 위기를 더 증폭시킨다는 본인의 연구 결과에 따라 양적완화와 금융사 지원정책을 구사하였다. 이 결과 금융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위기 회복에 따라 높은 급여와 성과급을 누린 반면 실물경제는 일자리상실과 소득피해를 보게 되었다. 도드-프랭크법이 대통령, 재무부, 연준 등의 거버넌스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의회의 통제와 국민세금 투입에 따른 책임까지 나아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주목하지 못한다면 금융은 일부 전문가들의 통제받지 않는 성역이 되고 ‘월가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경제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금융불안정은 모든 국민의 경제생활에 큰 고통을 준다. IMF 위기에서 우리 국민들은 많은 고통을 받았다. 따라서 금융안정을 위해 사전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대비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예금보호 상한을 증액하는 것과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예금보호 상한을 일률적으로 올리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여 금융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요율과 보장한도를 차등화하는 것을 포함한 보완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금융안정계정은 필요한 것이지만 공공의 자금이 투입될 것을 판단하는 거버넌스 장치를 명확히 하고 국회에 의한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 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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