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금융당국 올드보이'들이 공백기 없이 금융권으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퇴직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복귀를 알리거나 이례적으로 핀테크 업체로 재취업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행보다. 올드보이의 귀환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2~3년 휴식기를 가졌다면 최근에는 민관에서 일찌감치 자리를 챙겨주는 모습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으로 합류했다. 7월 말 퇴임식을 진행한 지 100여일 만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1991년 설립된 민간 연구기관으로, 정부의 금융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초빙 연구위원은 금융권 주요 현안을 분석하고 연구 과제를 정하는 작업을 자문하는 특임연구실 소속이다. 이 자리는 은성수·임종룡·신제윤·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거쳐간 곳으로 대표적인 '관피아 통로'가 됐다.
손병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토스의 금융경영연구소 토스인사이트 대표로 적을 옮겼다. 손 전 이사장은 2019년 5월부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역임했고 2020년 12월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해 2024년 2월까지 재직했다. 이후 한국거래소 고문으로 활동해 사실상 공백 없이 이직에 성공한 케이스다.
업계에서는 손 전 이사장의 취업을 두고 기존의 제도권 금융사가 아닌 신사업으로의 도전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현재의 공직자 취업 제한 규제를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토스인사이트는 올 9월 생긴 신규 법인으로, 올해 매출액이 없어 퇴직 공직자의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이 아니고, 손 전 이사장도 취업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토스가 손 전 이사장을 계열사 대표로 영입한 것을 두고는 미국 기업공개(IPO)를 위한 사전작업과 함께 금융당국의 규제를 우회적으로 풀어내려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2022년 7월 퇴임 후 잠행을 이어오던 이찬우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도 내년 1월부터 수협은행 사외이사로 금융권에 복귀한다. 이 전 수석부원장은 금융위 추천으로 임명돼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는 이석호 사외이사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후배들이 아직 금융당국 곳곳에 배치돼 있는 만큼 정부와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기대한 인사라는 분석이다. 이 전 수석부원장은 행시 31회로 김병환 금융위원장(행시 37회)보다 6기 선배다.
한편 지난 7월 퇴임한 김용재 전 금융위 상임위원은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장 자리에 취업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불승인'을 통보받았다. 윤리위는 김 전 상임위원이 재직 시절 증권사 인가 및 제재에 관여한 점 등을 고려해 이해상충 문제를 짚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올드보이는 여전히 금융당국 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복귀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지만 업무의 공정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다 보니 최근과 같이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 현장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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