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건립 시 가장 경계할 것은 동일 지역에서 같거나, 또는 비슷한 시대나 지역, 유형의 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 간 불필요한 경쟁 특히 소장품을 둘러싸고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의 경우 각 지방자치 단체 별로 각각 미술관을 건립하면서 가장 먼저 겹치는 부분이 지역출신 작가들의 작품수집이다. 사실 국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국내에서도 변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을 자기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두고 경쟁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면 대전시립미술관과 충남도립의 경우, 경기도미술관과 양평미술관, 평택미술관, 청주시립과 충주시립미술관 그리고 충북도립미술관은 어떤 소장품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나마 몇 명 안되는 지역작가들을 나누어 소장한다면 어느 곳도 자신의 지역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지역미술관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화와 조각이 아닌 판화, 조각, 디자인, 공예, 사진 등 특정 장르나 조선 시대 회화 또는 20세기, 21세기 동시대 미술에 집중하는 미술관을 건립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런 혼란은 미술관 건립을 검토하기 전에 미술관의 설립목적도 불분명한 가운데 '임무선언문'(Mission Statement)도 없이 시작하고 본 때문이다.
선언문은 미술관의 헌법 같은 것이다. 미술관의 교육적 초점과 목적, 대중과 소장품에 대한 미술관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기술해서 설립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언문의 개념을 확장시켜 미술관의 비전(Vision)과 가치 선언문(Value Statements)의 바탕이 된다. 미션은 목적, 비전은 미래, 가치는 신념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미술관의 행동과 운영을 위한 지침이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사명선언문'은 미술관의 비전과 정책 결정, 계획 및 운영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지침이다. 선언문은 기관이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되며, 미술관은 사명을 통해 미술관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직원의 행동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계획을 수립한다.
'미술관 작품수집정책'(Art Collection Policy)은 미술관이 운영되는 이유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는 소장품에 관해 규정한다. 정책은 관리하는 소장품에 대한 미술관의 전문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직원을 위한 가이드와 대중을 위한 정보 출처 역할을 한다. 또 정책은 책임 영역을 정의하고 특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수집정책은 미술관의 설립목적이나 임무 그리고 설립 주체, 규모 등 각각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컬렉션의 수집과 관리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윤리적, 법률적, 전문적인 절차를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수집정책은 우선 정책의 목표(Mission)와 목적(Purpose)을 정의하고 미술관의 사명에 부합하는 수집범위(Scope of Collection) 즉 어떤 유형의 작품을 수집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수집에 포함할 자료와 포함하지 않을 자료를 문서화하는 수집정책은 필수적이다. 수집범위에 포함할 특정 시대, 지역, 특정 작가의 작품 또는 회화, 조각, 사진, 판화, 공예 등 특정 매체를 포함할 수 있다.
특히 수집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인 사항 즉 대상작품의 예술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평가, 작품의 상태(Condition)와 보존의 필요성, 소유권 및 법적문제를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작품의 출처(Provenance)를 철저히 조사해 도난 또는 불법 유출된 작품이 아닌지 확인할 의무와 함께 관련 법률과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규정은 필수적이다.
작품 수집방법으로 기증(Gifts)의 경우 기증자로부터 작품을 수증하는 절차와 정책, 기증자의 권리와 미술관의 의무를 명시해야 하며, 기증자가 특정 시점에 작품을 기증하기로 약속하는 서약기증(Promised Gifts), 소장가 사후 유언 또는 유언장에 따라 작품이 미술관에 귀속되는 유증(Bequests), 기증자가 작품 일부를 기증하고 나머지를 소유하는 부분기증(Partial Gifts), 교환(Exchanges), 기탁(Consignment), 발굴(Discoveries)에 적용할 각각의 절차와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구입(Purchases)과 구매확정(Purchase Confirmations)에 따른 절차, 예산 할당, 구매확정 후 기록 및 보관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작품수집을 위한 사전 승인(Pre-Approvals) 즉 미술관 수집품에 새로 추가될 잠재적인 작품에 대해 큐레이터의 이미지, 역사적 맥락, 감정 또는 전문가 의견을 포함하는 작품수집제안과 이를 검토할 내부 및 외부 위원회 검토 절차에 관한 규정도 필요하다. 때로는 '작품수집 심의위원회의 역할과 심의 절차'(Collection Review Committee Deliberation Regulations)를 별도로 규정하기도 한다.
등록의 경우 우선 목록화(Inventory)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록화는 수집 방법과 자료의 위치에 관한 정보로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즉 작품의 유형, 등록일시, 크기, 위치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기록한다. 문서화(Documentation)는 소장품 관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문서화를 통해 소장품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관리와 보존을 용이하게 하며, 연구와 대중의 접근을 지원할 수 있다. 문서화에는 고유의 등록번호(Accession Records), 등록일자, 작품의 상세정보 즉 작가명, 제목, 제작연도, 재료, 크기, 특징 등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소유권 이전기록(Provenance Records) 즉 작품이 과거의 소유자로부터 미술관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며 미술관이 해당 작품을 취득한 방법(구매, 기증, 유증 등), 전시이력(Exhibition history)을 기록한다. 이와 함께 작품의 상태를 평가한 상태 보고서(Condition Reports)와 이후 지속적인 상태 모니터링 보고서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작품수집정책에는 소장품의 등록(Accession)과 폐기(Deaccession)에 관한 조항은 필수적이다. 폐기 또는 처분(Disposition)이나 이관(Transfer)에 관한 규정은 소장품의 처분 또는 이관 절차와 정책을 규정해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작품의 합법적 처분 방법을 제시한다. 때로는 출처 불명의 소장품에 관한 판매절차를 규정도 필요하다. 이후 소장품의 유형, 양식, 시대, 재료, 지역 등 관련 기준에 따라 소장품을 분류하는 목록화(Cataloging)에 관한 규정도 필요하다. 이때 키워드를 부여하면 검색을 쉽게 해준다. 여기에 고해상도의 사진과 소유권과 관련된 문서, 현지 또는 국가 및 국제 법률과 윤리 지침을 준수한 기록, 전시이력(Exhibition Records), 보험관련 정보(Insurance Documentation), 보험 및 기타 목적을 위한 가치평가와 관련된 감정보고서(Appraisal Reports)와 작품의 보존처리보고서(Condition & Conservation reports)와 특수한 작품의 보존 및 전시환경에 관한 기록(Environmental Conditions)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미술관이 자연재해나 인재로부터 소장품을 보호하기 위한 재난 대응 계획 그리고 소장품 관리와 관련된 정기적인 보고서 작성과 제출에 관해 규정을 두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미술관 소장품을 빌려주는 대여(Loan)와 관련한 일반적인 고려 사항과 대여 시의 책임과 관리 그리고 국외 대출 승인 기준 및 대출 기관 요건과 대출에 대한 보험과 장기 대출 절차와 함께 미술관의 전시나 조사연구를 위해 외부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미술품을 빌려오는 임차(Incoming Loan)에 관한 법적, 윤리적인 검토사항과 함께 보험과 운송, 반환에 관한 세부적인 규정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장품의 저작권(Copyright) 관리와 복제를 위한 규정과 소장품에 관한 공공의 접근성, 학술적 접근과 연구, 사진촬영 및 스케치, 상업적인 촬영을 위한 규정은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이렇게 중차대한 미술관의 가장 기본인 설립목적과 임무를 밝힌 선언문은 물론 작품수집정책에 관한 규정조차 없이 미술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서는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각 부처의 행태를 보면 설계도면 없이 고층빌딩을 짓겠다고 나선 꼴이라 조마조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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