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한 바퀴 완주하는 방법. 12월의 화려한 도심 속 풍경에 피로해졌다면, 차분하고 아늑하게 겨울을 즐길 수 있는 '전북 완주'로 떠나보자. 삼례책마을과 오성한옥마을에서 책과 전시를 즐기고 고즈넉한 작은 사찰 위봉사에서 마음을 정비한다. 만경강 일몰과 대둔산의 눈 쌓인 풍경은 덤이다.
◆하얀 눈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대둔산
대둔산이 가을을 벗고 겨울을 입었다. 겨울 대둔산은 가을 단풍이 주는 화려함은 없지만, 새하얀 눈을 머금은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대둔산은 한듬산을 한자로 만든 이름으로 '한'은 크다는 뜻이며 '듬'은 두메를 일컫는다. 곳곳에 드러나 있는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빼곡한 숲이 첩첩으로 쌓여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 왔다.
원효대사는 대둔산을 가리켜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격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까지 한달음에 오른다.
케이블카에서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대둔산의 백미 '금강구름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너머에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삼각계단'이 펼쳐진다.
대둔산 낙조대와 태고사 그리고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등산객들은 거센 눈발을 헤치고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를 향해 오르고 또 오른다.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는 퍽 웅장하다.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암봉은 지금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대둔산의 보물 같은 풍경이다.
◆고즈넉한 멋이 담긴 완주의 사진 명소
사진 명소를 찾는다면 오성한옥마을로 가자. 오성한옥마을은 지난 2012년 한옥 관광지원화지구로 지정됐다. 50가구 중 23채가 한옥과 고택으로 이뤄져 있다. 드라마나 광고촬영 배경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오성한옥마을 주변에는 종남산, 서방산, 위봉산 등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 호수, 토석담장, 한옥스테이와 오스 갤러리, 아원고택, 소양고택 등이 자리한다.
아원고택 1층에는 현대식 갤러리를 관람할 수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단아한 한옥 전경이 펼쳐진다. 아원고택은 '만사 제쳐놓고 쉼을 얻는 곳'이라는 만휴당과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된다. 안채와 사랑채는 진주의 250년 고택, 정읍의 150년 고택을 이축했다. 기본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서까래와 기와만 교체했다.
소양고택은 고창과 무안에 있던 180년 된 고택 3채를 해체해 소양면에 이축한 한옥이다. 오랜 세월 문화재 장인들의 손을 거쳐 그대로 복원된 소양고택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예술 콘텐츠가 가득 담긴 한옥 문화체험관으로 재탄생했다. 갤러리와 두베카페, 플리커 책방 등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BTS의 2019 썸머패키지 촬영지로 알려진 위봉산성도 신비로운 사진을 담아갈 수 있는 명소 중 하나다. 위봉산성은 1675년에 7년에 걸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이 성은 당초 폭 3m, 높이 4~5m, 16㎞ 둘레로 만들어져 3곳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다. 지금은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 문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는 붕괴돼 사라지고 높이 3m, 폭 3m의 아치형 석문만 현존한다. 아치형 석문 위로는 커다란 소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위봉사는 소양면 대흥리 위봉산 마루턱, 위봉산성 안에 자리한다. '추출산위봉사'라고 적힌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위봉사 경내로 들어서면 작은 문과 대조되는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보광명전 앞에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고찰을 지키고 서 있다.
비구니들만의 도량인 위봉사는 절제의 미학이 엿보인다. 사찰 내부 건축물의 배치나 공간 구성 어디에도 과장이나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팔작지붕으로 유명한 보광명전 지붕의 용마루와 추출산의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 자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양식창고'가 '지식창고'로 변신
삼례역 인근에 자리한 삼례책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삼례 양곡창고는 1920년대에 지어져 2010년까지 양곡창고로 사용됐는데 저장기술 발달 등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됐다.
삼례에서는 이 공간을 그대로 살려 수탈의 상징인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는 식량을 담아 두던 '양식창고'가 오늘날 '지식창고'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삼례책마을은 고서점과 헌책방, 북카페 등이 있는 북 하우스와 한국학아카이브, 전시와 강연시설을 갖춘 북 갤러리 등 세 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현재 삼례책마을 책박물관에는 <전설의 DJ 김광한 팝송전>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음반 8000여 장과 유명 가수들의 사진, 인터뷰 녹음테이프, CD, 방송원고, 음악 도서, 음향기기 등 2만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진귀한 앨범까지 한데 모여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광한의 방송 육성 녹음 파일을 다시 들을 수 있는 추억의 '골든팝스'도 상영한다. 전시는 내년 4월 14일까지 진행된다.
그림책미술관에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피노키오가 있는 피노키오 작은 전시 <이런 피노키오 보셨나요?>도 진행 중이다. 피노키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꼭두각시(마리오네타)를 비롯해 빈티지 책과 포스터, 디즈니 만화 속 피노키오 동 다양한 모습의 피노키오를 그림과 조형물로 만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해방 이후 2010년까지 삼례 농협 저장고로 사용됐고, 완주군이 주변 일원을 매입해 미술전시, 공연예술, 문화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 문화예술 재생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삼례문화예술촌은 1920년대 지어진 양곡 적재를 위한 목조구조 건물로 양식과 흔적이 보존돼 있어 예술촌 내부 건축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즐기고 싶다면, 잠시 들러 북카페에서 차 한잔을 즐기고 각종 전시를 구경하고 가기에 제격이다.
비비정은 조선시대 선조 때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은 곳이다. 그의 손자 최양이 송시열에게 정자의 기문을 부탁했고, 송시열은 중국의 명장 장비와 악비에서 두 글자를 따 ‘비비정’이라 했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처럼 옛 선비들은 비비정에 올라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비비정에 오르면 한내를 가로지르는 옛 만경강 철교가 한눈에 보인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당시 한강철도에 이어 2번째로 긴 나무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모았던 다리이기도 하다. 2011년 근처에 호남선 철교를 새로 놓아 폐철교가 되었다.
폐철교 위에 자리한 비비정예술열차. 새마을열차 객차 네 량을 개조해 만든 열차는 각각 칸마다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차 카페의 맨 마지막 칸에서는 철길과 함께 만경강의 일출과 일몰을 담아갈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