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 기업들은 다시 한번 미국에 무엇을 바쳐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바이든 정부 시절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으로 수십조 원의 미국 투자를 강요받았던 주요 기업들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고지서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IRA와 칩스법에 따른 미국 투자액을 회수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보조금 지원법 폐지까지 검토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고,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북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빈 곳간을 털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텍사스주의 가구당 소득은 2020년 6만629달러에서 2024년에는 6만6663달러로 4년간 6334달러 증가했다. 조지아주의 가구당 소득 또한 같은 기간 5만8756달러에서 6만6559달러로 7803달러 늘었다. 국내 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2년 조지아주의 실업률은 3%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현재도 전국 평균보다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텍사스주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3%를 기록하면서 최근 몇 년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 모든 성과는 SK그룹, 현대자동차, LG그룹이 자동차와 배터리 공장 건설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결과다.
반면 천문학적 돈을 투자한 한국 상황은 정반대다. 지난달 기준 한국 실업률은 3.7%로 2021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자영업자 폐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전체 사업자 중 폐업 사업자 비중은 2023년 기준 9.9%에 이른다.
또 2020년 25.9%를 기록했던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19.5%로 하락하며 2004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같은 기간 대미국 수출은 14.5%에서 18.7%로 4.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바이든 정부 시절 현대차, SK, LG, 한화 등 4개 기업이 발표한 미국 투자 계획 금액은 약 661억 달러(약 85조70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2기에서는 이보다 더욱 강화된 보호무역 정책이 예상되며, 국내 기업들의 추가 투자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가 투자에 따른 한국의 실질적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중국 수출은 극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고, 미국 내 보조금 제도의 폐지로 투자 자금 회수 또한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탄핵 정국에 돌입한 현 정부에 대한 기대 역시 크지 않다. 지난 2년 동안 바이든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에 대해 한국은 외교적 성과를 크게 얻지 못했으며, 결국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국은 트럼프 1기 때 중국의 우회 수출 경로로 지목되면서 전자제품, 철강 등 주요 수출 품목에 제약을 받았고, 일부 제약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 2기의 대한국 정책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외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신행정부 출범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 및 행정명령 등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이번에는 '무조건 숙이자'는 접근보다는 국내 기업들의 이익과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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