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탐1900 포스터](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14/20250214224000146550.jpg)
1900년 경자년(庚子年)은 중국엔 역사적으로 가장 굴욕적인 해였다. 그해 8월 의화단 사건(중국 청나라 말기 일어난 외세 배척 운동) 진압을 명목으로 쳐들어온 서구 열강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유린한 사건은 중국인에게 뼈아픈 기억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1900년대 굴욕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당탐1900(唐探1900)’이 춘제(중국 설) 연휴 개봉해 흥행 중이다. 중국 상업영화 감독 천쓰청(陈思诚)의 미스터리 탐정 코믹물 ‘당인가탐안(唐人街探案, 차이나타운 탐정사건)’의 네 번째 시리즈물이다.
당인가탐안은 '중국판 셜록 홈즈'라 불릴 정도로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시리즈 영화다. 각각 미국 뉴욕, 태국 방콕, 일본 도쿄를 무대로 삼은 1·2·3탄의 전작과 달리 ‘당탐1900’은 영화 속 무대를 125년 전인 190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왔다.
살인사건 이면에 깔린 쿨리들의 비참한 삶 그려
영화는 1900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백인 소녀와 인디언 추장이 살해된 사건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중국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미국 사회에서 중국인 혐오 감정이 들끓는 가운데, 부친을 잃고 인디언 부족 손에서 자란 아구이(왕바오창 분)와 중의학을 전공한 미국 유학 청년 친푸(류하오란 분)가 우연히 맞닥뜨리며 함께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특히 천쓰청은 상업용 영화 감독답게 대중의 입맛에 맞춰 오늘날 미·중 강대국 패권 경쟁이란 현실을 190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와 관객의 애국주의 감정을 자극한다.
미국 횡단철도 건설과 금 광산 채굴 등 위험한 노동에 싼값으로 동원됐다가 목숨을 잃은 쿨리들의 비참한 삶, 백인 주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중국계 이민자를 향한 경멸과 배척, 미국 의회의 중국인 배척법 연장, 차이나타운 약탈까지, 여기에 더해 8개국 연합군의 중국 대륙 침략과 중국 청년들의 혁명 운동, 그리고 미국 양당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자본의 권력 통제까지 당시의 정치·역사적 요소를 겹겹이 넣어 코믹물 영화에 무게감을 더했다.
캐스팅 면모도 화려하다. 당탐 시리즈 단골배우 왕바오창(王寶强)과 류하오란(劉昊然)이 이번 영화에서도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가운데, 유명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그랜트 의원 역)과 미국 홍콩배우 저우룬파(周潤發, 주윤발)의 등장도 영화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영화 당탐1900](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14/20250214224030562387.jpg)
美의 중국인 박해 거침없이 비판하는 저우룬파(주윤발) 명연기
저우룬파가 맡은 차이나타운 재미 실업가 바이쉬안링 역은 과거 미국 차이나타운의 안량탕(安良堂) 조직 보스 스투메이탕(司徒美堂)이라는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미국 현지 갱단의 괴롭힘에 맞서 단체를 결성하고 중국계 이민자의 권익 보호에 힘썼던 스투메이탕은 중국 혁명 지도자 쑨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 중국 내 혁명운동도 지지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영화 말미 저우룬파가 중국인 배척법 연장과 차이나타운 폐쇄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미국 의회에 맞서 나홀로 청문회에 나서 연설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미국 의회의 오만과 편견에 대항해 미국 법률의 위선, 흑백 인종 차별, 중국계 이주노동자의 현실, 미국 주류 사회의 중국인 및 중국 기업인에 대한 박해 등의 행위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당신들의 음식은 어디서 났나요? 음식, 집, 하물며 교통은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이는 미국의 독립정신이자, 건국의 기본이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봅시다. 평등은 어디 있나요?"
저우룬파는 최근 중국 관영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최대 성과는 영화 '당탐1900' 촬영 작업에 함께한 것"이라며 "바이쉬안링 역은 내가 지난 30년간 기다려온 배역'이라고 언급하며 애착을 드러냈다.
세련된 '주선율 영화' vs 역사교과서 복붙한 주입식 영화
영화 '당탐1900'은 같은 날 개봉한 중국 애니메이션 대작 '너자2(哪咤之魔童鬧海·나타:악동의 바다소동)’의 100억 위안 박스오피스 성적에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중국 영화예매 사이트 마오옌에 따르면 지난 13일 '당탐1900' 박스오피스 수입은 30억 위안도 돌파했다. 다만 영화 '당탐1900'을 놓고 관객들의 평은 다소 엇갈린다.
중국 영화평론 사이트 더우반에는 “영화는 중국인 배척법, 중국계 이주노동자의 현실, 미국 인종차별 등과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상업용 영화로 대중화함으로써 관객들의 역사 이해도를 높였다”, “영화 ‘장진호(長津湖)’나 ‘전랑(戰狼)’처럼 노골적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주선율(主旋律) 영화와 달리,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대중의 감정에 호소했다”는 등의 호평과 함께 "2025년 미국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기분이 묘하다. 지금도 현실은 125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는 등의 반응도 있었다.
반면,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직접 복사, 붙여넣기 해 관객에게 민족주의 감정을 강제로 주입했다", "영화는 한 상 가득 차린 만한전석 같다. 식자재는 비싼데(화려한 캐스팅), 요리 솜씨는 졸렬하다(혼란스러운 대본과 억지스러운 연출)", "미스터리 탐정 코믹 영화인데, 정작 탐정은 보이지 않는다" 등의 혹평 세례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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