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주요 원자재 수급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구리를 비롯해 철광석·알루미늄 등 국내 수입 비중이 높은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를 지속하면서 주요 수출 기업의 경영 악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1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구리 가격은 지난 7일 t당 9664달러를 기록했다. 연초(8685.5달러) 대비 11.3% 급등한 수치다.
제조업 필수재로 실물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하며 '닥터 코퍼'라는 별칭이 붙은 구리 가격의 경우 지난해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데이터센터 등 전력 인프라 수요 확대 여파로 상승세가 이어졌다. 다만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단기간에 크게 오른 건 트럼프 관세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따라 수요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며 "중국의 경기 부양 기대감도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말했다. 공급보다 수요 측면의 요인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는 12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량에 관세 25%가 적용되는 철강의 경우 리스크가 가격에 선반영된 상태다. 지난해 9월 t당 90달러 초반 수준이던 철광석 가격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구리와 철광석 등 필수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의 원가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차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움직임에 맞춰 미국 현지 생산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원자재 가격 압박까지 받게 됐다. 완성차 업계의 원가에서 철강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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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전 선두 기업인 LG전자는 지난해 3분기 기준 생활가전(H&A) 사업의 원가에서 철강 제품 비중이 11.7%로 집계됐고 구리는 3.8%를 차지했다. LG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당시에도 구리와 철강 제품 평균 가격이 전년 대비 각각 22.8%, 42.6% 오르면서 전사 원가율도 1.4%포인트 상승했다. 그해 영입이익은 12.5% 급감했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국내 수출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일부 원자재는 가격이 올라도 대체 불가하기 때문에 다른 부문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공격에 중국도 보복에 나서며 수출 통제 대상인 희귀금속 가격 역시 급등하는 추세다. 중국은 비스무트와 텔루륨, 몰리브덴, 인듐, 텅스텐 등 5개 금속에 대해 수출 규제를 걸었다. 그 결과 비스무트 가격은 지난달 17일 기준 파운드당 8.25달러로, 수출 규제를 시작한 4일 대비 38% 급등했다. 비스무트는 주로 방위 산업에 사용되며 자동차 코팅 및 페인트, 저온 합금 및 주조에도 쓰인다.
반도체, 배터리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안티모니 가격도 연초 t당 2만2250원에서 꾸준히 올라 지난 3일 기준 2만5275원을 기록했다. 두 달 새 13.6% 뛴 셈이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관세가 본격화하면서 우리나라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으며, 반도체의 경우 보조금 축소 가능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