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2] ⑤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를 모두 합한 우리나라의 총부채 규모가 6200조원을 돌파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내총생산(GDP)(2024년 2549조원)의 2.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난달 20일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3분기 말 원화 기준 비금융부문 신용은 6222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50조원(4.1%) 늘어난 규모다. 이 중 기업부채는 2798조원, 가계부채는 2283조원, 정부부채는 1141조원이었다. 한국은행 통계상 가계신용은 2024년 말 기준 1927조원으로 BIS 가계부채가 한은 통계보다 다소 높게 추계되고 있다.
총부채 규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인 2021년 1분기 말 5000조원을 처음 넘어섰고 이후로도 지속 증가해 2023년 4분기 말 6000조원을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다소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 말 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47.2%로, 2021년 2분기 말(247%)보다 소폭 낮다. 이 비율은 2023년 2분기 말(252.9%)을 정점으로 하락 전환한 뒤 5분기 연속 내림세를 이어왔다.
부문별로는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2023년 3분기 말(114.7%) 이후 4분기 연속으로 하락해 지난해 3분기 말 111.1%까지 떨어졌다. 가계부채 비율도 2023년 3분기 말(94.5%)에서 지난해 3분기 말(90.7%)로 4분기째 내렸다. 그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의 작년말 가계부채 규모가 세계 2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6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세계 38개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2위를 기록했다. 비율이 더 높은 국가는 캐나다(100.6%)가 유일했다.
한국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래 2023년까지 100%를 웃돌면서 약 4년간 '세계 최대 가계부채 국가'의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국민계정 통계 기준연도 개편 등으로 2023년 말 비율이 93.6%로 크게 하향조정되면서 순위가 2위로 내려왔다. 최근 들어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부채는 2023년 3분기 말 1020조원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141조원으로 1년 사이 약 120조원(11.8%) 급증했다. 특히 문 정부 기간 중 급증해 2016년 말 33.9%였던 국가채무/GDP(%) 비율이 2022년 4분기 말 마지노선으로 간주되고 있는 40%를 넘어 41.5%를 기록한 후 2023년 1분기 말 44.1%로 크게 뛰었고, 지난해 1분기와 2분기 말 각 45.4%, 3분기 말 45.3% 등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문 정부 기간 동안 정부부채 비율이 급등한 데는 문 정부 기간 추진되었던 재정주도성장(재주성)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인 2019년 5월 국가채무와 관련해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데 국제기구는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적극 재정을 펼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고 있는 재정통계 매뉴얼상의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한국만의 국가재정법에 의한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차이를 모르는 데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상환의무를 지는 국채발행 등 채무만 포함하고 있는 반면 선진국들은 공무원군인연금 충당금, 정부기능 수행으로 지게 된 공기업 채무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를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 비율은 단순히 추정해 13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경우 전체 부채비율은 349.4%로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 된다. 한국의 부채비율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더구나 일본은 기축통화국이고 미국과 무제한 상시통화스와프가 체결되어 있는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은 한국의 부채비율은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2021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재정지출 확대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일종의 ‘재정확대 선순환’ 이론을 제시했다. 재정지출 확대→경기회복→세수 증대→재정지출 추가 확대→경기회복 가속’으로 재정확대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므로 적극적으로 재정 확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놓은 것이다. 일종의 재정주도성장이다. 이런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여당은 추가경정예산 추진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거나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하면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느냐를 보는 지표로 흔히 재정승수가 이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정부투자지출은 0.9, 정부소비지출은 0.8, 이전지출은 0.3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난지원금 같은 현금살포식 이전지출을 1조원 하면 소득은 3000억 밖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세금을 거두면 소비가 줄고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올라서 투자자가 위축되는 등 민간부문의 투자소비활동이 위축되는 밀어내기효과, 즉 구축효과가 발생해 재정지출의 소득증대효과는 1보다 적게 나온다는 것이 재정학의 정설이다.
이런 재정학의 정설을 무시하고 ‘재정확대 선순환’ 이라는 재정주도성장 이론을 제시하고 그런 대통령의 언급이 나오면 곧바로 정부여당은 부랴부랴 추경을 편성했다. 문 정부 5년 동안 재정지출을 확대한 나머지 2022년 말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한국의 재정상황은 국가부채는 날로 증가해 재정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였다. 재정이 위기상황으로 치달으면 국가신뢰도가 하락해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일어나면서 외환위기도 발생할 수 있다. 위기가 오면 공적자금으로 금융회사들과 기업들도 구제해야 하므로 재정은 위기의 마지막 방파제다. 그런데 재정을 마구 헐어 쓰면 위기가 오는 경우 경제는 속절 없이 붕괴되어 실업자는 천정부지로 늘어나게 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임금을 올려주면 소비가 늘어나 소득이 증가한다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험으로 한국 경제를 붕괴시킨 데 이어 다시 재주성 즉 재정주도성장 정책이라는 정통재정학에서는 있지도 않은 정책의 실험으로 한국 경제를 완전히 나락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는 온전히 20·30 젊은 세대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돌아갈 것이다.
부채 관련 큰 문제는 이미 상당수의 부채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자영업자 차주 수는 311만5000명, 대출 규모는 1064조2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다중채무자(3곳 이상 채무)이면서 저소득상태(통상 하위 30% 이내)이거나 저신용(7~10등급) 차주를 의미하는 취약 차주가 42만7000명으로 2023년 말 39만6000명에 비해 3만1000명 늘었다. 신용이 악화한 영향으로 파악된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꾸준히 상승해 작년 말 1.67%까지 올랐다. 취약 자영업자의 경우엔 연체율이 11.16%로 더 높았다.
기업들도 어렵다. 지난달 발표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말 기준 외감기업에서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6.4%로 2022년(15.5%)보다 0.9%포인트(p) 올랐다. 차입금으로 보면 한계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18.5%에서 26.0%로 7.5%포인트 상승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하회해 채무상환능력이 취약한 상태가 3년간 지속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한계기업 비중(기업 수 기준 17.4%, 차입금 기준 31.9%)이 대기업(각각 12.5%, 23.3%)에 비해 높았다. 2022년과 비교하면 대기업 내 한계기업 기업 수 비중은 0.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소기업 내 비중은 1.1%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차입금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은 8.9%포인트, 중소기업은 3.0%포인트 각각 올랐다. 업종별로 보면 숙박음식 내 한계기업 비중이 2022년보다 9.2%포인트 하락했지만 59.0%로 절반을 넘었다. 이어 △운수 49.2%(5.9%p 증가) △전기가스 46.1%(38.0%p 증가) △부동산 43.8%(5.1%p 증가) 순으로 높았다.
한은 관계자는 “한계기업에 대한 신용공여가 대부분 은행권에 집중돼 있으나, 2021년 이후 상호금융과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서 취급한 여신 중 한계기업 익스포저가 증가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수익성, 유동성 및 차입행태 등을 선제적으로 고려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한계기업 징후가 높은 기업을 선별함으로써 차입금에 의존한 일부 한계기업이 장기존속해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저하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또한 차별화된 리스크관리 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한은은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도 언급했다.
부채감축은 가계의 소비위축, 기업의 투자위축, 정부의 재정지출 감소를 통해 경기위축을 가져오게 되므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특히 지금 한국처럼 성장률이 1% 초반대로 하락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부채감축은 고용참사를 더욱 악화시키게 되므로 지난한 과제다. 중국은 GDP에 대한 기업부채비율이 160%를 상회하면서 부채감축정책(deleveraging)을 2016년에 도입했다. 인민은행은 중기유동성지원창구 금리를 올리고 대손충당금을 더 쌓도록 하는 등 거시건전성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채감축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7% 수준이던 성장률이 4~5%대로 급락했다. 설상가상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경기가 더욱 급락하자 부채감축정책을 완화했다. 이만큼 부채감축정책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금융부실 증가로 금융제도 전반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더 큰 시스템위기로 비화될 수도 있으므로 문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질서 있는 부채감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주택공급 감소로 2~3년 후에 집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두려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3분기 말 5대은행 가계대출잔액 682조원 중 주택담보대출잔액이 518조원에 달하고 있다. 주택공급을 활성화해서 이런 가수요와 영끌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 기업부채는 일시적 유동성 부족 기업과 상환불능 기업을 구분해서 상환불능 기업은 채무재조정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재정은 문 정부 5년 동안 포퓰리즘으로 급증한 각종 보조금성 지출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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