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권사들의 전산 오류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매년 1조원에 육박하는 전산운용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증권사 중 전산운용에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이는 키움증권도 이틀 연속 전산오류가 발생하는 등 시스템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60개 증권사의 전산운용비는 지난해 기준 총 969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7883억원) 대비 23%, 2023년(8539억원)보다 13.5%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 유입이 급증한 2020년(5802억원)과 비교하면 1.7배 가까이 불어났다.
전산운용비는 전산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보안, 관련 인건비 등 전산망 전반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 실제로 전산오류 관련 민원은 감소세를 보였다. 자기자본 기준 상위 10개 증권사의 관련 민원은 2023년 101건에서 지난해 64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전산운용에 비용을 가장 많이 투입한 키움증권마저 이틀 연속 시스템 장애를 겪었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전산운용비로 총 1097억원을 지출해 전체의 11%를 차지했다. 2022년(919억원), 2023년(949억원)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지난해엔 전산 관련 ‘민원 제로’를 기록하는 등 시스템 안정성을 내세웠지만, 이번 사태로 신뢰가 흔들렸다.
키움증권은 지난 3~4일 이틀 연속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주문 지연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4일 오전 10시 30분 전산 정상화 공지가 올라온 직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시작되면서 전산오류가 재발했다. 하루 전인 3일 오전 9시 5분경에도 1시간가량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언으로 시장이 흔들린 가운데 급증한 주문량을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키움증권의 전산 사고는 피해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키움증권의 국내 주식시장 누적 점유율은 19.21%, 개인투자자 대상 점유율은 29.57%에 달한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민원 신청 절차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산운용비 상위권에는 키움증권 외에도 삼성증권(1055억원), 미래에셋증권(897억원), KB증권(707억원), 신한투자증권(670억원) 등이 포진하고 있다. 자기자본 10대 증권사 중에서 한국투자증권(480억원), 대신증권(378억원), NH투자증권(377억원), 하나증권(315억원), 메리츠증권(130억원) 등은 전산운용비에 500억원 미만을 지출했다.
NH투자증권 측 관계자는 “타사의 경우 대부분 자회사를 통한 아웃소싱 형태로 진행돼 IT부문 비용규모가 크게 잡힌다"면서 “하지만 NH투자증권은 자체 인력에 따른 개발 비중이 높아 비용규모가 적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트레이딩 채널의 비중이 높아진 만큼 전산운용과 관련된 투자 확대가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HTS·MTS 기반으로 리테일 비중이 높은 대형 증권사는 시스템 부하에 상시 대비해야 한다”며 “하지만 인력 확보와 전문성 강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외국계 및 중소형사는 전산운용비를 줄였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은 전산운용비를 전년 대비 84.5%나 삭감했으며, 유화증권(-10.9%), 도이치증권(-5.1%),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3.9%), 한국에스지증권(-3.4%) 등도 감소 폭이 컸다.
한편 시장에서는 6월 대선,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리스크, 대체거래소(ATS) 등 대내외 변수가 많아진 시점에 시스템 보완이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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