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연출 김원석)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공개 3주 차에도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를 지키며 글로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4막 공개 후에는 600만 시청수(총 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수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극 중 문소리는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녀 '애순' 역을 맡았다. 배우 아이유와 2인 1역을 소화한 그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어머니들이 한때는 얼마나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을까" 중점을 두고 캐릭터를 빚어나갔다.
"솔직히 이 대본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자식이 대학교 간 뒤부터 나오는데 고등어도 팔고 장사도 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역할'이라며 캐스팅을 제안했다면 '응? 왜 내게 그런 역할을 하라고 해?'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대본을 읽으니 '이건 꼭 해야 해' '이 중 어떤 역할이라도 나눠준다면 감사하다' 싶더라고요. 정말 참여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어요."
문소리는 '폭싹 속았수다' 대본이 문학 작품 같았다고 말했다.
"대본에 나왔던 그대로라고 보면 돼요. 장면 묘사도 굉장히 상세하고,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촬영했어요. 감독님께서도 작가님이 써놓은 걸 최대한 100% 구현해내기 위해 연출 방향을 많이 고민하셨죠. 읽으면서도 '이렇게 대본과 결과물이 똑같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심지어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와 만들어진 작품이 흘러가는 속도까지 거의 비슷할 정도니까요. 감독님께서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담기 위해 정말 많이 애쓰셨다는 걸 느꼈어요."

대본이 가진 의미, 정서를 허투루 표현하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시청자에게는 임 작가의 대본이 영상으로 완벽히 구현되어 즐거웠지만, 배우에게는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원래 재즈를 하던 사람인데, 마치 카네기홀에서 덕망 높은 지휘자와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게 된 거라고요. 물론 내가 하던 재즈 스타일은 남아있겠지만, 작은 펍에서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과 클래식의 완성도를 놓고 비교할 순 없잖아요. 각자의 훌륭함이 있는 거죠. 이번 작품에서는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어요. 최대한의 퀄리티로, 작품에 대한 존중을 담아 연기한다면 분명히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문소리는 아이유와 함께 '애순'을 연기했다. 한 인물을 두 배우가 연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그는 "우리가 바라보는 지점이 맞아야 할 거로 생각했다"며 캐릭터의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을 언급했다.
"한 인물을 두 사람이 함께 연기하는 만큼, 바라보는 지점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연기하는 애순이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아이유 씨가 연기한 애순이 어떤 감정으로 흘러왔는지를 알아야 연결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서로 대화하길 원했고, 그런 점에서 함께 나눈 시간이 큰 도움이 됐죠."
그는 자신이 연기한 '애순'과, 아이유가 표현한 '애순'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다.
"제가 연기한 애순은 아이유 씨가 연기한 애순과 본질은 같지만, 또 다른 미션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30대 후반, 그러니까 서른여덟 살쯤부터 시작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애순은 사회적으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기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누구나, 특히 여성은 그런 존재로 규정되기도 하죠.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던 봄과 여름을 지나면, 결국엔 '엄마들은 다 그렇지 뭐' 하고 받아들여지는 그 보편적인 얼굴이 있어요. 저는 그 애순을 표현해야 했고, 그 보편성을 입힌 채 하나의 인물로 연결해내야 했어요. 본질은 같지만, 그 위에 하나가 더 씌워지는 느낌이랄까요."

극 중 시청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건 '애순'이 겪는 시간의 흐름이 무척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문소리는 아이유가 연기한 '애순'이 그러데이션 되어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 너~무 좋아' 같은 대사는 누가 연기해도 비슷했을 거예요. 하하. 그래서 더더욱 제 애순 안에 아이유 씨가 연기한 어린 애순의 느낌이 슬쩍슬쩍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어린 애순이다!' 하고 확 드러내고 싶진 않았고요. 오히려 그 시절의 감정이 스며 나오는 듯한 그러데이션을 원했어요."
문소리는 '애순'을 연기했지만, 자꾸만 '금명'에게 마음이 쓰였다고 고백했다. 결국 자신도 한 사람의 '딸'이기 때문이란다. 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금명'의 마음. 자주 표현하진 못해도 미안함과 그리움, 애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무게를 문소리 역시 껴안고 있었다.
문소리는 "저 자신이 금명 같은 딸이었기에 이입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속상했겠구나, 반성 되는 지점도 있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늘 금명이 편이었던 것 같아요. 하하. (금명에게) 서운한 적도 없었고요. 금명이 마음을 이해하니까. 저는 아이유가 짠하더라고요. 모든 걸 잘 해내는 사람을 짠해하나 싶지만, 걱정되고… 다 해냈는데도 괜히 안쓰럽게 느껴져요."
남편인 장준환 감독은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배우 문소리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문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많이 칭찬했다"며 멋쩍어했다.
"남편이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인데 많이 울더라고요. 제가 고민했던 걸 다 아니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다 보고 나면 왜 애순이 꼭 문소리여야만 했는지 알게 될 거다'라고 하고 다녀서 화들짝 놀랐어요. 너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니까요. '무슨 소리야' 하면서요. 하하."
문소리는 장 감독이 '양관식' 같은 면모가 있다면서 "기사가 나면 기고만장해질 거 같아서 걱정"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촬영 할 때) 남편 생각이 많이 났죠. (박)해준이랑은 남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둘이 영화 '화이'도 찍었으니까. 저도 해준이 아내(배우 오유진)를 잘 알거든요. 촬영 내내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지. 하하! 남편과 18년을 함께 사니까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새삼 이렇게 오랜 시간을 옆에서 '당신이 최고야'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드라마를 통해서 한 번 더 실감했어요."

진짜 '양관식'이었던 박해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렇게만 찍으면 '전원일기'처럼 20년, 30년을 찍어도 재밌겠다 싶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분들이 참 힘들었겠다' 싶었는데 '폭싹 속았수다'를 찍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척척 호흡 맞는게 재밌고 두런두런 이야기만 해도 온갖 감정이 다 담겼잖아요. 그런게 참 좋더라고요. 박해준이 양관식이라 너무너무 좋았어요."
임상춘 작가와 김원석 감독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문소리는 먼저 임 작가에 관해 "솔직히 아직도 어떤 분인지 모른다"고 털어놓으며 "알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전 솔직히 임상춘 작가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요. 드라마 뒤풀이도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고 제 연극을 보러 오셨을 때도 고급 과자만 대기실에 전달하시고 바로 자리를 떠나셨거든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 너무 궁금해요. 작가님께서 '애순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게 눈물 난다'면서 밥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얼른 4월 말로 약속을 잡아놨습니다. 하하."
김원석 감독에 관해서는 "디테일이 엄청난 사람"이라며, 그의 집요함이 작품의 퀄리티를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석테일'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그분의 집요함이 작품의 퀄리티를 어떻게 높였는지 말로 다 표현 못 해요. 집념의 사나이죠. 냉장고 성에부터 나무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가짜 같은 건 못 견뎌요. 집안 살림을 찍으면 '이게 그 시대에 있었던 게 맞느냐'고 일일이 따지죠. 함께하며 정말 감탄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문소리는 '폭싹 속았수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대본이 정말 아름다웠다. 여러분도 이 대본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덧붙였다."
"대본집이 꼭 나오면 좋겠어요. 강력하게 요청하는 내용을 기사에 써주세요. 하하! 대본집으로 읽으며 느끼는 게 또 다르거든요. 정말 많이 울고 웃었고 깊이 감동 받았어요. 다시 한번 (폭싹 속았수다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