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고질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부과하기로 한 국가별 상호관세가 9일(현지시간) 전격 발효됐다.
한국과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을 조준한 미국의 관세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중국이 보복관세를 통한 강경 대응으로 갈등 수위를 올리는 상황에서 미국과 개별 국가 간 협상이 지연되면서 다른 국가도 맞대응에 동참할 경우 글로벌 통상 전쟁이 격화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5일부터 전 세계 교역 상대국에 10%의 기본관세(보편관세)를 부과했다.
이날부터 한국을 포함한 80여개 국가에 최소 11%에서 최고 50%의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는 기본적으로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미 25% 관세가 부과된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자동차의 경우 상호관세 25%가 추가로 가산되지 않고 기존 관세가 유지된다.
미국 정부가 ‘최악의 침해국’으로 분류한 캄보디아(49%), 베트남(46%), 태국(36%), 대만(32%), 일본(24%), EU(20%) 등도 기본관세 이상의 고율의 상호관세가 부과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 추가된 대(對)중국 관세는 104%로 오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발표했을 당시 중국의 국가별 상호관세는 34%였다.
하지만 이에 중국이 상응하는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부터 50%포인트의 관세를 추가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34%에서 84%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미국 유입 차단에 대한 비협조를 이유로 20%의 관세가 부과된 상태여서 총관세율이 104%가 됐다.
상호관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 일부 품목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예고된 상황이어서 아직 트럼프발(發) 관세 공세는 진행형이다.
다만 미국 정부는 상호관세를 시행하면서 개별 국가와 협상도 병행할 방침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해방의 날(상호관세가 발표된 4월 2일) 이후 약 70개국이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연락을 취해 왔다”며 “대통령은 오늘 아침 무역팀을 만나 협상을 요청하는 모든 국가와 맞춤형 무역협상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8일 미 CNN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맞대응하지 않고 협상할 것”이라며 “기업이 타격을 받기 전에 한미 양국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 권한대행과 전화통화에서 협상 테이블에 무역 및 관세와 무관한 사안도 같이 올릴 것이라며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패키지 딜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 온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등이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등을 통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고 조선, 반도체 등 장점이 있는 영역에서 미국과의 산업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관세 폭풍을 넘어서겠다는 기조다.
미국 관세 공격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힌 중국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8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담화문에서 “미국이 고집대로 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 양상으로 들어갈 경우 그동안 양국 간 물리적 충돌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해온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가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미국의 높은 관세로 중국 제품들이 전 세계 시장에 더 싸게 풀릴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처럼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나라들은 미국의 관세 못지않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중국뿐 아니라 EU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나라들까지 미국의 조치에 반발해 맞서게 된다면 본격적인 세계 무역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상호관세 조치는 관세를 100여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다른 국가들이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로 보복할 경우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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