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43%서 시작된 연금계단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

  • 국민연금 고갈론을 넘는 길 …상생과 연대의 정신 지향해야

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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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새파짜기 II] ⑧


연금개혁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였다. 오랜만에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연금개혁의 출발선을 넘었다. 연금개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 둘째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간 관계를 재설정하고 공무원연금, 사학연금과의 구조를 조정하는 구조개혁이다.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여야는 2년간의 논의 끝에 먼저 모수개혁을 진행하고, 이후 구조개혁 과제로 나아가자는 잠정합의를 도출했으나, 대통령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최근 여야가 합의한 내용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되, 2026년부터 8년에 걸쳐 매년 0.5%씩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식이다. 소득대체율은 2026년부터 40%에서 43%로 인상된다. 이는 2023년 말 합의된 44%보다 낮은 수치지만, 일단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국민연금법 제3조의2를 개정하여 국가가 연금급여 지급을 보장하는 법적 책임을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개정된 조항에 따르면, 국가는 “연금급여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며, 연금급여의 지급을 보장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책임을 넘어 법적·제도적 책임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일부에서는 보험료 인상과 급여 삭감이 청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결국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청년의 희생에 기초한 구조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나아가 국민연금이 애초에 세대 간 연대를 위해 설계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오히려 세대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회의론도 존재한다. 이러한 연금 무용론과 고갈론이 맞물리면서 “청년은 결국 연금을 못 받는다”는 불신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국민연금 도입 초기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들이 일면적임을 알 수 있다. 보험료율은 처음 3%에서 시작했지만, 이는 1988년부터 5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 것이며, 1993년 6%, 1998년에는 9%로 단계적으로 인상되었다. 이러한 설계는 처음부터 점진적 조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초기 소득대체율이 70%였던 것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이자율, 당시의 낮은 평균수명, 가족 단위의 부양 구조 등을 고려한 결과였으며, 청년세대에 대한 일방적 희생이라 보기는 어렵다.
IMF 위기 이후 저성장과 고령화가 맞물리고, 공동체 구조가 약화되면서 연금 구조의 조정은 불가피해졌다. 낮은 금리, 늘어난 기대수명, 출산율 저하 등 현실을 고려하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더 나아가 현행 적립방식의 연금제도는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고갈이 불가피하다. 독일 등 주요국이 적립방식(Fully Funded System, 우리나라는 부분적립방식·Partial Funding)에서 부과방식(PAYG·Pay-as-you-go)으로 전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지급 책임이 법률에 명시됨으로써, 기금 고갈 이후에도 연금 지급이 지속될 것임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부과방식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현실화되려면, 가장 큰 과제는 결국 재정의 감당 가능성이다. 청년세대의 의구심도 이 지점에 집중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기금 고갈을 앞세워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연금제도의 세대 간 연대성을 강화하고, 국가의 지급 보장을 실질화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 마련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청년기본자산 형성을 위한 청년연금의 도입, 둘째,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의 개편이다.
우선 청년연금은 국가가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부터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해 청년기에 기본자산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청년들도 출발자산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이른바 사회적 연대상속 개념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청년기본자산법’이 발의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매월 20만원씩 18년간 적립하여 청년이 성인이 된 이후 필요한 시점에 인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원금만 약 4320만원이며, 운용 수익을 포함하면 약 6000만원 규모의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 국가 외에도 부모나 본인이 임의로 추가 적립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면 자발적 저축도 장려할 수 있다.
 
사진저자 제공
[사진=저자 제공]

국회 예산정책처는 소요 예산이 초기에는 매년 누적되지만, 18년 이후에는 출생아 수에 따라 연 6조~13조원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예산 규모나 GDP 대비로 볼 때, 이 정도 재원을 청년세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은 국가의 전략적 선택이다. 이는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청년에게 투자하자”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동시에 국민연금의 국가지급 보장에 대한 불신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청년연금은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지연시키는 효과도 있다. 사전에 국가가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국민연금 기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나아가 청년연금을 보육, 돌봄 등 저출생 해소 분야에 투자할 경우 출산율 제고에 기여하는 외부경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운용의 전문성 문제다.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연금 고갈 시점은 늦춰진다. 이를 위해서는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공적 기금인 만큼 정책적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이해집단의 개입은 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거버넌스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금운용위원회는 다양한 집단이 참여해 방향을 설정하되, 실제 운용은 2~3개의 독립적 기금운용실이 수행하도록 조직을 이원화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연금 규모가 너무 커 연금의 매매가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평가와 목표 설정은 독립적인 상위 기구가 맡고, 실제 운용은 자회사 형태의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수행하여 성과를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다. 캐나다의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운용조직에 과업을 부여하며 수익률을 극대화한다. 스웨덴도 유사한 체계를 통해 대표성과 전문성을 함께 확보하고 있다. 청년연금이 도입된다면 운용조직을 3개로 늘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국가의 지급 책임이 법제화되고, 연금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제도적 토대를 바탕으로 청년세대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막연한 불안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려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대 연대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연금은 그 출발점이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출발자산을 마련할 기회를 주고, 청년세대는 연금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 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연금이 지향해야 할 상생과 연대의 정신이다. 더 나아가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퇴직연금 등과의 구조적 불일치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이제 연금개혁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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