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미국 주식시장에 이어 채권시장에서도 대규모 투매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월가에서는 이 혼란의 배경에 중국이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미 국채 수익률은 10년 이상 만기 장기물을 중심으로 지난 4일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국채 수익률 상승은 국채 가격 하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채 매도 물량이 매수 물량보다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11일 뉴욕시장 마감 무렵에도 10년물 수익률은 4.5%에 근접해 마감한 가운데 증시가 다소 안정세를 되찾은 것과 달리 채권시장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통상 주식시장이 급락할 경우 안전자산 선호로 국채 가격이 상승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월가에서도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미국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동시에 약세를 보인 것으로 미국의 신뢰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와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미 국채 관련 파생금융상품 시장에 참여해온 헤지펀드들이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투자 포지션 청산에 나선 데다 은행권마저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채 매입을 줄이거나 오히려 매도에 나선 게 수급 요인 상 미국채 매도 우위 압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미 국채가 안전자산으로서 지위를 의심받으면서 안전자산 투자자산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신호라는 분석도 나왔다.
또한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관세 전쟁의 '주적'으로 겨냥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보유한 미국채를 대거 매도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 재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말 기준 중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7608억 달러로 일본(1조793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보유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오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한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
오쿠무라 아타루 SMBC닛코증권 수석 금리 전략가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국채를 매도하고 있을 수 있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줌으로써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 분석 기관 야드니리서치의 에드 야드니 창립자도 “중국을 포함한 해외 보유자들이 자산 매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채권 투자자들의 우려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최근 미 채권시장 혼란이 중국의 매도와는 무관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프라샨트 네워나 TD증권 전략가는 "만일 중국이 매도했다면 단기물 금리가 더 높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중국이 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국채 매도세는 주로 장기물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전반적인 투자자들의 자산 재배분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현시점에서는 중국이 실제로 국채를 매도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이 제3국 금융기관을 통해 미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역시 실질적인 매도 주체를 파악하는 데 걸림돌으로 작용한다. 5월 말이 돼야 중국의 4월 외환보유고 변화를 파악할 수 있고, 더 명확한 자료는 6월 중순에 공개되는 미 재무부 지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 매도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미국채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미 채권 이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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