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상 참정권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데도 광역단체장들의 선거 출마를 구태라고 비판한 이유는 선출직 임기 중반에 선거판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중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은 김동연 경기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등 4명이다. 사실 더 많은 광역단체장들이 대선 출마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밝혔거나 거론됐다가 불출마를 선언해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선 출마를 위해 ‘선거일 30일 전까지’만 사퇴하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실질적으로는 수개월간 단체장이 정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방치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각종 민생 현안과 정책 판단은 뒷전으로 밀리고, 행정은 부시장 또는 행정부지사에게 형식적으로만 위임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대구시장을 사퇴한 홍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직을 유지한 채 ‘법적 테두리 안의 활동’이라는 명분으로 당내 대선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대구광역시도 홍 시장의 중도 사퇴로 행정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1년 넘게 운영된다.
선출직이 사직하면 보궐선거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다. 이번에는 갑작스러운 대선으로 남은 임기 만료일이 1년 미만이라 보궐선거가 치러지진 않는다. 보궐선거 비용을 원인제공자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매번 나오지만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 잇따른 대형 화재, 공사장 붕괴 사고 등 재난급 위기 속에 지방자치단체장의 부재는 치명적인 행정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해당 지역을 책임지는 자리이자 주민의 삶과 직결된 실무 총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출마가 일부 단체장에게는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 공천, 당선을 위한 ‘인지도 마케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선 경쟁력이 높지 않더라도 경선 참여만으로 언론 노출과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소위 ‘대권 주자’라는 정치적 타이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조직 운영의 효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 윤리와 유권자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출직 공직을 통해 얻게 되는 공적 자산을 철저히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셈이다.
앞으로 선거 출마를 원하는 현직 단체장은 최소 6개월 전 사퇴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경선 참여 시에는 공직을 병행할 수 없도록 하는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또한 사퇴 이후의 대행 체제에도 주요 정책 결정 권한을 제한하는 등 책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한 제도 정비도 해야 한다.
정치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책임’이 우선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명분’이 아니라 ‘공적 책임’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맡은 지역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공동체를 이끌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광역단체장의 대권 출마는 자유지만 그에 따르는 정치적·행정적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한다. 반복되는 셈법과 무책임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 이를 외면한다면 지방자치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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