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이우진 작가 "검정고무신, 우리 이야기…권리는 지워졌다"

이우진 작가사진 이우진 작가
이우진 작가[사진= 이우진 작가]

“형이 군대 가며 넘겨준 바통, 저는 그렇게 검정고무신을 그리게 됐습니다.”

1992년, 만화잡지 대원 챔프에 《검정고무신》이 처음 연재됐다.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그 시점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이는 동생 이우진 작가였다.

“형제끼리 이름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그냥 Team 이우영으로 함께 작업하는 마음으로 임했죠.”

이우진 작가는 1권 중후반부터 8권 초반까지 주요 에피소드를 그리며 새로운 캐릭터와 색깔을 더했고, 이후 외전 격 단행본도 꾸준히 제작해왔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검정고무신은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만화였어요”

《검정고무신》은 1960~70년대 한국 서민 가정의 일상과 정서를 담았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대원챔프 이사님의 제안으로 그 시절 배경의 만화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놀이문화나 정서도 제가 겪었던 시기여서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특히 캐릭터의 대사와 설정은 콘티를 넘어 그의 애드리브가 더해지며 더욱 입체적인 재미로 완성됐다.


“기영이, 기철이, 그리고 제가 만든 땡구까지…”

“검정고무신의 주인공은 기영이와 기철이지만, 사실 인기가 가장 많은 건 콘티에도 없던 강아지 땡구예요. 제가 애드리브로 만들어낸 캐릭터죠.” 이우진 작가는 만화를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문화 콘텐츠”로 정의하며 세대를 잇는 정서적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만찐두빵, 길거리 간판에서 카페 이름까지”

그의 유머감각은 작품 밖에서도 이어진다. 경기 포천에는 ‘만찐두빵’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만찐두빵’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길에 있던 만두찐빵 간판을 가로로 읽은 건데, 그게 재밌어서 가게 이름으로 써봤어요.”

“계약은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검정고무신》은 7년 넘게 저작권 분쟁에 휘말려 있다. 출판사 측이 작가들에게 동의 없이 굿즈 사업과 애니메이션 제작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작가들과 협의 후 진행'이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출판사는 이 과정을 무시했어요. 만든 애니메이션을 2차 창작이라 주장하며 작가들은 권리가 없다고 했죠.  이것이 받아들여 진다면 한국 만화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겁니다.”

1심에서는 일부 승소했지만, 현재 출판사 측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계약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이우진 작가는 현재의 법과 제도가 창작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력한 처벌 규정이 없으면 계약은 무용지물입니다. 창작자는 늘 을의 입장에 놓이게 돼 있어요.”

그는 지금도 전국 사인회에 가면 초등학생들이 “작가님~!” 하며 안기러 오지만, 그 뒤편에서는 법정에 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이우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이우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창작은 인류를 있게 한 힘입니다. 절대 멈추지 마세요”

“창작은 인간이 처음 불을 만들고, 말을 만들고, 문자를 만든 이후부터 이어진
가장 본질적인 힘이에요.
무너지지 말고,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우진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이우진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검정고무신》은 기영이의 하루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루였고, 어릴 적 마음이었다. 그 작품을 만든 손끝이 이제는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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