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현지시간) 제267대 새 교황으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선출됐다. 그는 첫 미국 출신 교황으로, 1985년부터 남미 페루에서 20년 넘게 선교사와 주교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했다.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남미 출신 교황’으로서 군주적인 교황상에서 벗어났다면, 새 교황은 북미와 남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지리적·문화적 중심축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임 교황인 레오 14세는 관용과 대화를 중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사제가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과는 다소 거리를 두되, 교회의 외연을 넓혀 온 ‘신흥국 중심’ 행보는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재임 기간 중 한국과 북한을 직접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우선 새 교황은 2027년 한국을 공식 방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8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WYD)에서 2027년 차기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WYD는 2~3년 주기로 7~8월경 열리는 가톨릭의 대표적인 청년 축제로, 교황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만나 소통하는 자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위 중이었던 1984년과 1985년 바티칸에 전 세계 청년들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1986년 정식으로 시작됐다. 이후 역대 교황들은 WYD 개최지에 직접 방문해 청년들과의 만남을 이어왔다. 이러한 전통을 고려할 때, 새 교황 역시 2027년 서울 대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레오 14세 교황이 실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는 한국을 찾는 역대 세 번째 교황이자, 교황의 네 번째 방한으로 기록된다. 앞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과 1989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2027년 서울대회에 내외국인이 많게는 70만~80만명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관광,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상당한 생산 유발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교황 방북 프로젝트’가 재개될지에도 종교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집필한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메디치미디어)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방북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다. (북한에)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며 방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교황의 방북은 성사 직전까지 진행됐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당시 교황청은 △북한 당국이 가톨릭 공동체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이 탄압의 두려움 없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종교인지 따지지 말고 모두 석방해야 한다 등 중국과 베트남 수준의 종교 개방이 담긴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북한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국내 종교계에서는 교황 선출에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은 축하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에 새로운 희망과 영감을 전한 이번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미국 출신 첫 교황이라는 점이 시대 변화와 다양성 포용의 새로운 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나 교정원장은 “지구공동체가 여러 갈등과 도전에 직면한 시기에,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상호 존중과 협력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며 레오 14세 교황이 인류 화합과 평화 증진에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역시 총무원장 진우스님 명의로 축하 메시지를 내고 "가톨릭과 레오 14세 교황의 기도가 세계 인류에게 늘 함께하며,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도 큰 희망과 위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이라는 첫 메시지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평화와 연대의 정신이 온 세계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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