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재원 논설위원장]
우선 구체적인 정책 내용과 실현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단순한 슬로건 뒤에 숨겨진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지, 세금 정책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제시된 정책이 과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공약의 허점이나 모순은 없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둘째는 후보자의 과거 행적과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후보자가 과거에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행동은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리더십 스타일, 문제 해결 능력, 위기 대처 능력 등 후보자의 전반적인 자질과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한 투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정당의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후보자가 속한 정당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이념이나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정당이 과거에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당의 역사를 통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우선순위를 엿볼 수 있다. 유권자들이 당연히 알 것 같아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새로운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넷째는 장기적인 비전과 방향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나 즉각적인 혜택만을 약속하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는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담겨있는지 평가하는 것은 절대 필요하다.
다섯째는 소통 방식과 태도를 관찰하는 것이다. 후보자나 정당이 유권자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반대 의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등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인지, 아니면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인지 등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정치 교과서에 실린 얘기지만, 유권자는 이러한 기준들과 다양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우는 과정 자체가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투표 행위임을 다시 각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선거에서 후보자들의 매니페스토(Manifesto)보다는 인기영합적인 발언이나 포퓰리즘(Populism)적 행동이 더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정치에서 오래되고 중요한 주제다. 매니페스토는 선거에서 후보자나 정당이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책 목표와 그 실현 방안을 담은 공약집이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명확히 제시해 유권자가 후보의 자질과 정책 역량을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 강지원 변호사 등이 매니페스토 후보를 자임하며 정책 중심의 선거를 시도한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포퓰리즘은 대중의 직접적인 의지에 호소하며 기존 엘리트나 기득권층을 비판하고, 흔히 단순하고 매력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 스타일을 의미한다. 유권자의 감정이나 즉각적인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매니페스토보다 포퓰리즘적 접근에 더 반응하는 이유를 몇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먼저 정보의 복잡성과 접근성이다. 매니페스토는 종종 상세하고 복잡한 정책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 유권자가 모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평가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포퓰리즘적 발언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감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다음은 감정적 호소력이다. 포퓰리즘은 유권자들의 불안, 분노, 희망과 같은 강력한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예컨대 특정 집단을 비판하거나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을 약속하는 등의 메시지는 복잡한 정책 설명보다 유권자의 마음을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미디어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미디어 환경은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이슈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후보자의 포퓰리즘적 발언은 뉴스 헤드라인이나 소셜 미디어(SNS)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큰 주목을 받는 반면, 매니페스토의 상세한 정책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될 수 있다. 특히 SNS에서는 에코챔버 현상(같은 의견의 정보만 흘러나오는 현상)을 심화시킨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유권자의 우선순위다. 모든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책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유권자는 후보자의 이미지, 리더십 스타일, 또는 특정 이슈에 대한 명확하고 강력한 메시지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불만이 클 때,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는 복잡한 정책보다는 당장 변화를 약속하는 단순한 주장에 더 끌릴 수 있다. 최근 선거 공약 분석에서도 복지에서 경제와 산업의 성장으로 중심 이동이 관찰되는데 이는 유권자의 경제적 관심사를 반영하며 포퓰리즘적 접근과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신이 가세한다. 기존 정치 시스템이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깊을수록, 복잡한 정책 과정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매니페스토보다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서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는 포퓰리즘에 기대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외국 언론은 한국 대선의 어떤 측면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가?
많은 외신들은 이번 대선을 '분열된 선거'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후보 간 대립과 선거 과정에서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강조되고 있으며, 후보와 그 가족에 대한 스캔들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선거가 “스캔들과 말다툼으로 오염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보는 미디어도 있다. 특히 리더십 교체가 한국의 안정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외신들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국제관계, 특히 미·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새 대통령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 언론은 새 대통령이 미국에 편향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보 동향과 관련해서는 선두를 달리는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의 경제정책과 사회통합 비전이 주목받고 있으며, 국힘당의 김문수 후보는 경제 지원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한다.
외신들은 한국 언론의 보도 스타일에 대해서는 정책검증이 부족하다며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후보자의 사생활이나 가십성 보도가 많고, 정책에 대한 논의가 적다는 지적과 함께 유권자들은 언론에 보다 공정한 보도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외신들은 한국 대통령 선거의 경제정책에 대해 매우 주목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우선 AI와 경제부흥을 꼽을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AI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AI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완화와 기업 지원,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도 주요 이슈로 다룬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외신들은 한국의 경제정책이 미국과의 무역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한다. CNN은 한국 유권자들이 경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후보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처럼 외신들은 한국 대선의 경제 정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특히 AI와 문화산업 투자, 규제 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한국의 경제 부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경제신문 5월 13일자 사설이 관심을 끈다. ‘한국 대통령 선거, 분단극복으로 나아가는 논쟁이 필요하다’는 주제의 사설은 “한국 사회는 보수와 혁신, 지역 간뿐 아니라 청년과 노인, 젊은 남성과 여성 등 다양한 대립 축으로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국민통합과 경제성장, 격차 해소, 일자리 창출, 복지정책 등 실효성 있는 개혁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중도·무당파층의 지지로 직결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국의 해양진출 등 군사적 위협은 물론 동맹국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도 한국에 직격탄을 날린다. 한·일 양국은 공통의 현안을 안고 있고, 한국이 흔들리면 지역 안보와 경제 협력도 흔들릴 수 있다. 한국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크게 흔들리기 쉽지만, 국정과 지역 안정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논쟁을 기대해 본다”고 이번 대선을 보는 시각을 정리했다.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가 한국의 미래에 큰 희망을 주는 선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관리, 유권자 참여 촉진, 후보자들의 정책 비전 제시, 갈등 해소와 화합의 메시지 등의 요소들이 잘 결합된다면, 한국의 미래에 큰 희망을 주는 선거가 될 것이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한국의 유권자로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성찰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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