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드디어 대선이 끝나고 새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가장 큰 첫 번째 과제는 경제살리기다. 기업들은 해외로만 나가고 건설업 소상공인 자영업의 파산은 증가하고 성장률은 계속 하락하니 고용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과 소상공인들은 거의 빈사상태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건설업 폐업 신고는 925건으로 집계됐다.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를 합한 수치다. 이 중 70%가 지방에 집중됐다. 올해 1분기 국내 경기 위축과 고금리 여파로 외식업과 숙박업을 중심으로 한 소상공인 매출이 1년 새 두 자릿수 하락하고 폐업한 개인사업자만 약 50만 곳에 이르고 있다.
내수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수출도 하락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수출은 572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로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나란히 8% 이상 급감했다. 두 시장이 전체 수출의 35%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 수출 부진은 자동차가 관세 직격탄을 맞은 탓이 크다. 3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조치 이후 자동차 수출은 4월엔 20%, 5월에는 무려 32%나 줄었다. 일반기계(-5.6%), 철강(-20.6%) 등 다른 주력 품목들도 줄줄이 타격을 입었다. 중국 수출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중국경제의 하락으로 반도체 수출은 14.6% 줄었고 일반기계는 13.6%, 석유제품은 20.9%나 감소했다. 양대 시장에서 자동차·반도체·철강·기계·가전 등 주력 품목이 동반 추락하는 등 한국 수출의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은 ‘국산화 가속’ 전략으로 한국산 부품과 장비를 대체하려 하고, 주요 시장에서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잠식해 나가고 있고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과 제조업 부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수출 내수 모두 어려우니 기업투자가 늘어날 리 없고 그 결과 고용이 증가할 리 없다. 지난 4월 15∼29세 청년 실업률은 7.3%, 청년실업자는 28만 3천명을 기록했다. 지난 해 4월 4.1%, 16만 2천명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청년 백수’가 120만명에 달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거나, 비경제활동 인구 중 쉬었음 또는 취업준비 청년의 수를 모두 더하면 숫자다. 지난해 113만 명과 비교하면 1년 새 7만명 넘게 증가한 수치다. 경제 성장 둔화와 내수 부진, 제조업·건설업 불황, 기업들의 경력직·중고 신입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활동이 없이 쉰 청년은 50만명으로 나타났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청년 가운데서도 4명 가운데 1명은 단기근로자였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경기가 이런데도 선거에서 이긴 정부는 찾아보기 힘들다. 1979년 영국 1980년 미국에서는 경기불황의 원인이 2차 석유파동이었지만 정권이 교체되었다. 당시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등장 배경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독 20대 여성의 58% 30대 여성의 57%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데 비해 20대 여성의 25% 30대 여성의 31%만이 여당인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중요한 배경으로 판단된다.
만약 새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경제는 지금 안정되고 번영된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2011~2018년 연평균 3.2%의 성장률을 유지해 오던 한국경제성장률은 2019~2024년 연평균 2.1%로 주저앉은 후 올해는 1% 미만의 성장률 전망이 대세다. 이런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금년에는 1%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2030년에는 1%대 초반으로 하락세를 지속해 2040년대에는 0% 내외로 전망된다는 충격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불과 15년 후 0%대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데 새 정부의 중차대한 시대적 책무가 있다. 미국의 관세압박과 한국의 높아진 임금, 경직된 노사관계 등으로 해외투자로만 나가고 있는 기업들을 어떻게 국내에 남아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느냐가 우선 중요하다. 저임에다 근년에는 기술력까지 높아진 중국의 공세에 한국기업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도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대미협상에선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핵심 품목에 대한 실질적 관세 완화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럴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느슨하게 하면 안된다. 가치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미국이 대중국 전략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혹시라도 금이 가는 문제가 발생하면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미국 해군 군함의 한국 유지보수 문제가 삐끗해 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국 백악관은 한국의 대선 결과와 관련해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이례적인 언급으로 중국을 향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미국 정부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간질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대미 대중 전략의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선 중국의 국산화 압력에 맞서 기술 경쟁력을 지켜내야 하지만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군에서 한국을 따라오거나 심지어 추월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국의 제조 2025에 이은 ‘제조 굴기’가 눈앞에 다가왔다.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여 기존에 운용되고 있는 한중자유무역협정도 재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처럼 대미 대중 통상문제가 새정부가 미중간에 균형감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다. 단기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통상·산업·연구개발(R&D)·인재 양성을 아우르는 국가적 로드맵이 시급하다. 주력 산업마저 불안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수출은 물론 생산과 고용 전반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기술 고도화, 현지화 전략, 수출시장 다변화 등을 정교하게 추진하고, 아세안·인도·중동 등 글로벌 사우스 신흥시장과의 교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상수로 굳어진 지금, 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경제 리더십이 절실하다.
준공후 미분양인 악성 미분양 물량이 2만 6000가구가 넘어 줄폐업이 이어지고 관련 금융회사의 부실도 증가시키고 임금근로자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는 건설업은 시장경제의 논리로 접근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는 7월에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시행될 예정이라 지방 미분양 우려에 따른 건설업계 '7월 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준공후 미분양물량이 늘어나면 입주를 예상하고 계획했던 학교와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상업시설과 후방사업도 어려움을 겪어 나라 전체적으로 돈줄이 마르고 경기가 더 위축될 수 있다.
집도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생산비용을 커버할 정도는 되어야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 수도권의 집값 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추면 집을 지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건설업체들은 지방으로만 내려가서 지방은 악성 미분양이 발생해서 지금처럼 경제 자체를 주저앉히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건축인허가 주택착공 물량이 모두 감소해 조만간 공급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을 활성화하고 아직 소득이 적은 연령대의 청년들에 대해서는 직장 가까운 직주근접 장단기 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민간 임대사업자를 활성화하고 다주택자 중과세도 개선되어야 한다. 토허제 초과이익환수제 양도세 상속세 등 비시장경제 논리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공급이 부족해 져 문재인 정부 말기현상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
기업의 활력이 생겨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소득이 늘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온기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 경제논리다. 지금은 양질의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는데 임금수준은 높고 금리도 만만치 않으니 초과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저녁에는 아예 문을 닫는 등 소상공인 자영업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이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민생경제 회복과 경제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며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표방했다. 앞서 ‘10대 공약’ 맨 윗자리에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올렸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예산 대폭 증액, 100조 원의 민간 투자 유도로 성장 기반 구축, 국가 첨단전략산업 투자 국민 펀드 조성, 안정적 연구·개발(R&D) 예산 확대, 벤처투자시장 육성, 바이오산업의 제2의 반도체산업 육성 등을 공약했다. 경제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는 약속은 바람직하다.
반면 노동분야 공약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하도급 노동자들이 원청 사업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원청 업체가 이들 하도급 근로자와 임금협상 등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업장 내 노사자율 협의를 주도할 '근로자(노동자)대표위원회' 상설을 제도화하고 계약직, 파견직, 사내하도급 노동자들도 인원 비례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노조 성격의 사내 조직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참여할 길을 터준 것으로 사측 입장에서는 정규직 근로자 외 다양한 직군의 근로자들 목소리를 반영해 노사협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내용이다.
이 밖에 공기업·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를 전면 도입하고 일정 규모 이상 민간회사도 경영진에 예속되지 않은 독립이사를 일정 비율 이상 선임하는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또 노동 분쟁을 전담할 노동법원 설립과 주 4.5일 근무제 도입도 밝혔다.
자본시장 관련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관련 규정을 개정해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기업경영을 흔들 수도 있는 내용들이어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어야 침체하고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관련해서는 RE100을 강조하며 신재생 및 풍력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높은 신재생 및 풍력에너지 구입단가로 현재 한전의 부채가 200조원이 넘어 전력망 투자도 못하고 있다. 높은 산업용 전력요금 때문에 공장가동을 심야에만 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RE100보다는 CF100에 역점을 두고 값싼 원전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서는 노랑봉투법 양곡법의 재추진도 거론되고 있다. 확대추경과 지역화폐의 국비지원 의무화도 거론되고 있다. 적극적 재정 투입을 예고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나라 곳간 지키기’다. 지난해 한국 국가채무는 117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6%에 달했다. 새 정부가 하반기에 3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가 50%에 근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비기축통화국에서 과도한 국가채무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재정위기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근로자들과 농민 소액주주 환경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와 때라는 것이 있다. 우선 급한 경제살리기에 치중하면서 순리에 따라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정부 때 30여 회의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공급부족으로 마지막에 집값이 폭등하고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고용이 악화되자 마침내 통계까지 조작한 적이 있다. 경제란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는 논리가 있다. 유사한 실정이 반복되어서는 새정부의 시대적 사명인 경제살리기가 힘들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경제살리기에 진력해 주기를 바란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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