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對北 포장, 또 반송되지 않으려면

  • 이젠 선물 상자 대신 인내의 시간을

[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2개의 조선론'  

21대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의 저하다. 정치, 경제, 통상 등 다른 이슈들은 여느 때처럼 핵심이슈로 다뤄졌지만 남북관계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보궐선거여서 그걸 파고들 시간도 부족했던 탓이겠지만 국정에 대한 균형 잡힌 견제와 관심의 표명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김정은은 2024년 1월 15일, ‘2개의 조선’론을 선언했다. 그는 “북남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이며,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두 국가 관계’라는 언명은, 북이 1948년 정권 수립 이래 고수해온 대남 적화통일론(1국가론)을 거둬들이겠다는 것처럼 비쳐져 한때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진보-좌파 통일론의 대표 격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그해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의 2개 국가론을 수용하자고 했다. “통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우선 평화를 구축하고, 미래는 후대에 맡기자”는 것. 그의 주장은 그러나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우리 쪽에선 북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북은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였다.
 
임종석은 2018년 북을 평창올림픽에 끌어내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 중의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 임종석 같은 사람을 굳이 찾는다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다. 그는 지난 5일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8개월에 벌금 2억5000만원, 추징금 3억2000여 만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모시던 이재명 지사도 이 사건과 관련해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됐고, 수원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이화영은 2023년 6월 검찰에서 방북비 대납을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이를 번복했다. 한 판사는 “북한에 불법송금을 한 사실관계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만큼 이 대통령과 이화영의 공모 여부가 유무죄를 가를 거”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발의해 본회의 의결을 앞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 중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사건 재판은 이 대통령 재임 중엔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조선일보 2025년 6월 6일)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남북관계는 물론 이를 둘러싼 관련 국가들 간의 관계가 냉전 때와는 다른 양상을 띤 채 급속히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시대엔 이념에 대한 공유 여부가 국가생존의 첫째 조건이었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익(國益)이 이념을 저만치 밀어냈다.

그렇다고 국익이 전부냐? 그것도 아니다. 강대국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주변국둘에게 이념에 대한 공유(동조)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태가 단적인 예다.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일본, 북한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같다.
 
‘침투된 체제’(Penetrated System)'


일찍이 국제정치학의 대가 제임스 로즈노(James N Rosenau)는 ‘침투된 체제’(Penetrated System)라는 표현을 썼다. 정의하면 “국내정치 구성원이 아닌 제3의 행위자가 국내정치 행위자와 공동으로 국내정치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권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가 ‘침투된 체제‘의 희생자가 될 리는 없겠지만 언제나 조심은 해야 한다.
 
‘침투된 체제’ 속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각종 범죄 혐의가 다시 논란이 될 경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어떻게 투영될지 걱정이다. 미국, 일본보다 중국, 북한, 러시아, 그리고 한때 선진국들이던 나라들의 반응이 더 시니컬하고 차가울 것이다. 이 문제는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여부나 호불호를 떠나 국가적 관점에서 봐야 할지도 모른다. 큰 틀에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6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정상 업무를 시작했다. 두 정상은 20여 분간의 통화에서 한·미 간 관세 협의에 대해 양국이 만족하는 합의가 조속히 이뤄지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이 대통령을 방미 초청했다. 이로써 두 정상은 이달 15일 주요 7개국 정상회의(캐나다 앨버타)에서도 만날 거라는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24~26일 네덜란드에서 열릴 NATO 정상회의 참석도 검토 중이다.

햇볕론자 이종석 국정원장 발탁
 
이 대통령의 한·미 정상외교의 성공을 기원한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위한 행보에 앞서 한·미 정상회담을 먼저 갖게 된 것은 다행이다. 미국은 우리의 절대적 우방일 뿐 아니라 확인하고 풀어야 할 현안들이 많아서다. 미국의 입장을 경청하고 그 입장 위에서 국익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전문가들을 망라해 대응 팀을 꾸렸다고 하지만 미심쩍은 대목도 없지 않다. 늘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관련 전문가들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폭넓게 섞이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남북관계 연구를 독점했던 소수 인사들이 다시 그 자리를 꿰차고 컴백했다 .
 
이번에 일약 국정원장에 기용된 이종석씨(69)를 두고도 말이 많다. 그는 대학시절(성균관대) 노동신문을 사서 읽었고 이를 밑받침 삼아 북한의 항일투쟁과 조선노동당 연구로 석, 박사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햇볕론자다.
 
이 원장은 1994년 세종연구소 연구원으로 출발해 45세에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장, 48세에 통일부장관을 거쳐 이번에 국정원장이 됐다. 능력이 출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묵묵히 남북문제를 연구해온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 원장은 이번 대선에 이재명 후보의 남북관계 컨트롤 타워인 민주당 선대위 산하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 좌장을 맡아 외교 안보 자문역할을 했는데 이게 결정적이었다고들 한다.
 
다른 관점에서 잘된 인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국정원장 자리는 남북문제를 주로 보는 통일부와는 달리 세계를 상대로 정보를 취급하는 자리다. 작은 부처의 책임자가 맡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학실력도 출중해야 하고, 정보를 다루는 타고난 감각도 있어야 한다. 남북관계를 맡아 북으로부터 오는 전문(電文)이나 챙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이제라도 잘못된 인사, 무리한 인사는 없었는지 챙겨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 중이고, 돌연 ‘신 2개 국가론’을 들고 나와 남북 간 대화가 쉽게 재개될 것 같지는 않다. 대화와 설득에 능하고 성취욕이 강한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마 답답할 것이다. 그래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독일이 통일을 앞두고 실천했던 ‘작은 걸음마 정책’을 늘 되새겨야 한다. 남북관계는 어떤 정권에서도 인내심을 겨루는 경기다. 북한의 환심을 사겠다고 뭔가 ‘선물’을 준비하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웬만한 건 모두 대북 제재에 걸리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와 주변정세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가 북을 핵보유국이라고 인정했다. 북한군은 소련과의 합동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크게 키웠다고 한다. 북한군은 핵무장 국가일 뿐 아니라 대륙간 미사일까지 보유한 나라다. 이를 통해 러시아를 무력으로 지원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방 3각(북 중 러)과 남방 3각(한 미 일)의 대결을 우려하기도 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이 진짜 온다’ 2023년 8월)

 남북정상회담
 
어떤 경우에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섣부른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충고가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진보’로 분류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평양을 방문했다. 이들은 자신의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여한 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DJ는 2000년 6월 13~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평양에서 돌아오면서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북은 핵개발을 했고 지금은 공인된 핵보유국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4일 방북해 북측과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 등에 관해 합의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20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9·19 군사합의)했지만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이 합의는 결국 2024년 6월 4일 윤석열 정권이 그 효력을 전면 중지시켰다.
 
대화도, 회담도 물론 해야 한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든 대화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처해야 한다. ‘역사적 평가’ 같은 그런 단어는 잊어야 한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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