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사업 진행됐으면 계약 유효…대법, 조합원 뒤늦은 반환 청구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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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이 작성한 환불보장 약정이 조합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아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하더라도, 조합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돼 조합원에게 실질적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수년 뒤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분담금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부산의 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A씨 등 4명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분담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A씨 등은 2016~2017년 사이 조합과 조합원 가입계약을 체결하고 수천만원 상당의 분담금을 납부했다. 이들은 계약 당시 조합 측이 작성한 ‘안심보장확약서’를 근거로, 향후 토지 확보에 실패해 사업이 무산될 경우 계약금 및 용역비 전액을 반환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합은 2019년 2월 설립 인가를 받았고, 이후 아파트 건설을 위한 사업계획 승인을 거치는 등 실질적 개발 절차를 진행해 왔다. 이에 A씨 등은 사업이 상당 부분 추진된 이후인 2022년 8월, “해당 확약서가 조합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아 무효이므로, 이를 근거로 체결된 조합가입계약도 무효”라며 기존 분담금 전액 반환을 청구했다.

1심은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금 반환을 명시한 환불확약이 조합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조합가입계약도 무효로 볼 수 있어 분담금 환급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2심은 판단을 달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합이 이미 설립 인가를 받아 토지 확보 실패로 인한 사업 무산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수년이 지난 뒤 환불 확약의 무효를 이유로 계약 자체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봤다. 이어 “조합의 실질적 사업 추진과 그에 따른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계약 무효 주장은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하급심의 이 같은 판단을 수용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계약 무효는 기존 분담금 납부 행위와 모순되고, 이로 인해 다른 조합원들이 손해를 입는 결과는 형평성과 정의에 어긋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조합이 작성한 환불확약서가 조합 총회 결의 없이 작성된 점에 따라 계약 전체가 무효인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총회 의결 없는 약정이 원칙적으로는 무효가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이미 사업이 실질적으로 진척된 상황에서 수년이 지난 뒤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법리를 확립했다.

신의칙 위반 판단은 조합원 개인의 권리 주장과 공동체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법원이 어떻게 형평성을 조율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지역주택조합 등 집단계약 관계에서 계약의 형식적 흠결보다 실질적 진행 상황과 구성원 간 이해 균형이 더 우선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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