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디지털 화폐가 월스트리트에 데뷔했다. 2025년 6월, 역사상 최초로 디지털화폐 발행사 서클(Red-Hot Circle)이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68% 폭등했고, 이틀째 247% 급등했다. 서클은 스테이블코인 USDC를 발행하고 있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2위의 스테이블코인이다. 미국 의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를 앞둔 상황에서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사진=온라인 웹사이트]
디지털 자산의 개념과 구분
디지털 자산이란 '분산원장기술 등으로 생성·저장되며 전자적 방식으로 이전 가능한 재산적 가치'로 정의한다. 이 중 일부는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디지털 화폐란 금전적 가치가 전자적 형태로 저장, 이전 또는 거래될 수 있는 통화를 의미한다. 최근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의 기술들이 발전하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적용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디지털 화폐가 발행되고 있다. 아날로그식 현금에서 디지털 기반 화폐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크게 가상자산(Virtual asset),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로 구분된다. 가상자산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분산 환경에서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만든 일종의 디지털 자산이다.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커 화폐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등의 단점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의 단점을 보완해 민간 기업들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통화와의 일정한 교환비율을 설정했다. 보통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그 정보의 주체가 민간이 된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통제가 어렵다든가 하는 단점이 있다.

디지털 자산의 분류와 특징 [사진=온라인 웹사이트]
CBDC는 중앙은행 내 지준예치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새로운 화폐를 가리킨다. 중앙은행에서 발행하고 정부가 직접 관리·감독한다는 면에서 안정성이 높다. 가상자산은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어, 자금세탁, 탈세 등과 같은 불법적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통제가 가능하다. 즉, 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할 수도 있으나, 필요에 따라 익명성을 제한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기존의 화폐를 대신할 수 있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가속화 할 수 있고, 물가안정 등과 같은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CBDC를 시범 운용한 사업이다. 한국은행은 2020년부터 CBDC 연구개발에 착수했고, 여러 차례의 기술적 테스트를 거쳐 실거래 실험 단계까지 도래했다. 2025년 4월~6월 약 10만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CBDC를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실험에 참여하는 이용자들은 은행 앱을 통해 전자지갑을 개설한 후, 예금을 토큰으로 전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물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이용자가 전자지갑을 열고 QR 코드를 제시하면, 점원이 스캔하여 결제가 완료된다.

프로젝트 한강, 세븐일레븐 예시 [사진=한국은행]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공동주관 하에 계획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금보험공사, 은행연합회,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의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쳤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농협, 부산 총 7개의 테스트 참가은행이 예금 토큰 발행을 허용하고, 예금 토큰에 대해 예금보험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테스트 참가은행들은 예금 토큰 발행 잔액 대비 7% 이상의 디지털 화폐를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여야 한다. 프로젝트 한강 참가 사용처에는 세븐일레븐 등과 같은 오프라인 상점과 땡겨요 등과 같은 온라인 쇼핑을 모두 포함했다.

프로젝트 한강 참가 사용처 [사진=한국은행]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적 수단이 아니다.”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2025년 6월 10일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면서 한 말이다.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있고,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급물살을 타고 추진되었고 2025년 6월 17일 최종 통과 되었다(자세한 사항은 000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올 수 있다.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이용하는 모든 온라인과 오프라인 지급결제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내어줄 수 있다. 지급결제 산업뿐만 아니라, 통화주권과 금융주권을 잃을 수도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 하기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 법적 예측성이다. “사업하다가 감옥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버릴 수 있다. 둘째, 유연성과 실효성이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신설하고, 민간 위원을 3분의 2 이상 점유하게 하여, 산업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발맞춰 제도를 조정해 나갈 수 있다. 셋째,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금융위원회 인가 및 등록 절차를 통해 투명하고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넷째, 안전성도 고려하고 있다. 사전 인가제를 도입한다. 자기자본 요건(5억원 이상)과 준비금 보유 등의 자격을 부여하여,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다섯째, 건전성을 갖추고자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상장할 경우, 시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불공정거래를 감리함으로써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의지다.
최근 은행권 공동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 중이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은행 등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가 주도하고 있다. 은행들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000에서 논의했듯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 등 미국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을 논의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로 볼 수 있다. 다른 은행들이 추가로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은행끼리 힘을 합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리스크를 분산하고, 법적 규제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USDT, USDC 등 기존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맞서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의미도 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의 디지털 화폐
한국은행은 민간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통화로 대체되면 통화정책이나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자본통제 문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거래가 쉬워지기 때문에 감독을 피해 해외로 자금을 쉽게 보낼 수 있다. 즉, 자본 규제 회피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비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관리·감독 범위 안에 있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허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한편, 금융불안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수취한 현금을 활용해 국채에 투자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채권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발행사의 현금으로 상환해 줄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마치, 은행이 위험자산에 투자했다가 위험자산 가치가 급락했을 때 예금을 지급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해 가치가 급락하고, 대규모 국채 매도가 일어나거나, 뱅크런(Bank run) 즉 대규모 인출 사태가 나타날 때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의 충격이 올 수 있다. 미국도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한국은행도 유사한 견해가 있다.
더욱이 한국은행으로서는 CBDC를 한국의 가장 적절한 모델로 생각한다. 한국은행이 직접 관리·감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보다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년부터 여러 차례의 시범 운용과 실생활 실험까지 거쳤기 때문에 디지털 화폐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향방은?
무대응으로 일괄할 수는 없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범용화되고, 한국 기업과 가계도 점차 달러 사용이 늘어날 수 있다. 즉,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원화를 대체해 나갈 것이다. 통화 주권을 잃게 될 수 있다. 외환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지급결제 시장도 뺏길 수 있다.
한국식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개척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을 결합한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CBDC 발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은행 주최로 개발한 CBDC 시스템에서 시중은행들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는 방향이 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통해 비이자이익을 영위하고, 한국은행이 관리·감독 기능을 갖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향이라고 평가된다. 시중은행들이 염려하는 ‘은행 패싱’ 문제와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관리·감독 기능’을 유지하며,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는 방법을 고안해 낼 것으로 보인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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