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가 자국 핵시설을 폭격한 미국을 향한 대응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확전의 불씨가 홍해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년 전에도 예맨의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에 공격을 감행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유럽, 대중동 수출이 차질을 빚었다. 당시 미국으로 수출을 늘리며 위기를 극복했지만 올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자국의 경제 피해와 석유를 수입하는 우호국 반발을 무릅쓰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벼랑 끝 전술로 봉쇄를 택하면 후티 반군을 활용해 또다시 홍해 물류망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아 정부의 시나리오별 대응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23일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 주재로 중동 사태 관련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국내외 경제 영향 점검과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란 의회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의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제 유가는 출렁였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전 거래일 대비 2.3% 상승한 배럴당 76.7달러, 브렌트유는 대륙간거래소에서 3.9% 오른 80.0달러로 거래를 시작하며 국제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가 현실화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2023년 말 홍해 사태로 해상운임이 급등하면서 대유럽, 대중동 수출이 작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홍해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과 물류 회랑 다변화에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유럽 간 교역액이 가장 큰 품목인 수송기계(자동차 등), 정밀화학제품, 광물성 연료가 각각 전년 대비 7.4%, 7.9%, 22.2% 감소했다"며 "철강, 정밀기계, 산업기계, 기초산업기계, 기계요소공구 등과 같이 주요 제조업 품목의 대유럽 교역액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품목별 대중동 교역액도 자동차 등 수송기계는 17.2%, 석유화학제품은 11.8%, 비철금속제품은 5.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유럽, 대중동 수출 감소 여파가 주로 제조업에 타격을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중동 등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중동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문신학 산업부 1차관은 이날 수출동향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우리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업종별 담당과와 관련 기관들은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유사시 필요한 조치를 즉각 시행할 수 있도록 업무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