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행정·입법 독재 시절 야당의 역할

내란 특별검사팀이 지난 주말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 담긴 혐의 중 하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대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사전 통제 장치를 무력화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기소는 피의자의 일관적인 수사 비협조로 이른 시점에 이뤄진 것이지 특검팀의 활동은 최장 4개월 정도 더 이어질 전망이다. 계엄 명분을 위해 북한을 도발하려 했다는 혐의와 관련한 외환 수사는 아직 진행 중으로 추가로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김건희 특검팀, 채 해병 특검팀의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어 앞으로 윤 전 대통령이 받아야 할 재판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기소되던 날 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2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다. 추모식 참석자들은 "순직 2년이 지났지만 진실 규명이 되지 않았다"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만큼 채 해병 순직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수사는 윤석열 정부 내내 더디게 진행됐다. 

같은 날 김건희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를 압수수색했다. 그는 이 사건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나기 전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피고인 9명 모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을 통해 야당이 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이들 특검팀의 강제수사도 착수됐다.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은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부당함을 피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시절 야당이 추진했던 이들 특검팀 수사를 위한 법안들을 단지 정쟁의 수단으로밖에 여기질 않았다. 

특검팀 압수수색 대상자들의 반응을 보면 왜 그토록 특검법을 반대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여당과 사실상 '한 몸'이었던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으로 이들 특검법은 폐기됐지만 새 정부는 가장 먼저 '3대 특검법'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채 해병 순직 2주기 추모일 "책임자가 책임을 지게 되길 바란다"고 했으니 관련자는 수사를 받으면 된다. 

헌재의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이를 줄곧 반대해 오던 한국사 강사 출신 인사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의 입당으로 정치권에서는 '친길계'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는 "'다구리'를 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당내 상황을 전했다. 언론 보도에 등장한 이례적인 표현으로 확인해 본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뭇매'를 이르는 부랑배들의 은어라고 한다. 

이재명 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지난주 마무리됐지만 일부 후보자들은 보좌관 갑질 의혹,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논란이 됐다. 이들 후보자는 시민사회는 물론 심지어는 여당 내부에서도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청문회 시작 전 당 역량을 쏟겠다며 대대적 검증을 예고했지만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야당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대선 일각에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입법부 독재에 행정부도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 말 역시 어느 정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정부·여당이 독재와 같은 통치를 하려고 한다면 야당이 강력하게 견제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 영구 집권을 노리고 망상에 사로잡혀 위헌적 계엄을 선포한 전직 대통령과의 완전한 절연이 필수적이다. 그런 다음 부랑배들의 행태에서도 벗어나야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훈 정치사회부 차장
정해훈 정치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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