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사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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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6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자, “능력 있는 사람에게 왜 돈을 안 빌려주느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겉으로만 보면 합리적인 반응일 수 있다. 소득이 충분한 사람들까지 대출을 막는 것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6억원’이라는 숫자의 현실성이다.

연봉 8000만원인 직장인이 30년 만기로 대출을 받아도, 매달 200만원 안팎의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여기에 자녀 교육비, 생활비, 노후 자금까지 고려하면 이 금액은 결코 가벼운 부담이 아니다. 일정한 소득이 있더라도, 지금의 대출 구조는 대부분의 중산층에게 실질적으로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막았다’는 이유로 분노한다. 분노의 근원은 단순하지 않다. '돈을 왜 더 안 빌려주냐'는 불만의 배경에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레버리지 사회’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노동으로는 자산을 모으기 어렵고, 자산이 자산을 부르는 구조 속에서 부를 키워야만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퍼져 있는 것이다. 대출은 ‘빚’이 아니라 ‘기회’가 되었고, 주택은 ‘사는 공간’이라기보다 ‘자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기회를 놓치면 계층이동은 불가능하다는 절박함이 레버리지에 집착하게 만든다.

실제 레버리지를 활용해 자산을 불리는 전략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계속 유효했다. '강남불패', '지금 (부동산) 가격이 제일 싸다' 등의 표현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고위 관료들이 모두 강남 등 소위 상급지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일반국민들의 '레버리지 사랑'을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6억원 제한을 '사다리 걷어 차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출로 자산가격을 높이고, 또 이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방식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부를 나눌 수 있다면, 남미의 어느 나라라도 부국의 지위에 쉽게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레버리지 사회의 끝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풍선이 결국 터지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과거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며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단순한 찬반을 넘어, 우리가 어떤 경제 질서를 원하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과도한 것인지, 혹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레버리지 중심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되묻는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매달 받는 월급이 우습게 여겨지는 사회에선 누구도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소득으로는 집을 못 사고, 대출 없이는 자산을 불릴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특히 청년 세대는 노동을 ‘지속 가능한 축적의 수단’이 아닌 ‘일시적 생계수단’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근로 의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자산 소득이 아니라 노동 소득만으로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금융·세제 정책의 축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단기적인 분노보다 구조적인 전환이 시급하다.

부동산을 통해 단번에 삶을 바꾸려는 사회는 결국 대출을 권리로 오해하게 되고, 그 권리가 차단되면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출이 아니라, 왜 우리가 일해서는 집 한 채를 못 사는 사회가 되었느냐는 점이다. 다시 묻자. 우리의 분노는 ‘규제’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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