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강변 수많은 공원 중 선유도와 노을공원은 다르고도 같은 기억을 간직한다. 하나는 물을 정화하던 정수장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도시 쓰레기가 쌓이던 매립지였다. 이들 두 곳에는 지금도 자연을 거슬러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과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이제 흉물이 아닌 생태와 예술이 공존하는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과거 서울시민의 상수도를 책임졌던 정수장이었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이곳은 산업화 시대의 인프라로 제 기능을 다했다. 이후 2002년 서울시는 이 공간을 생태공간으로 전환했으며 과거 구조물 일부를 그대로 보존했다. 삭막했던 콘크리트 정수조는 이제 식물과 물이 흐르는 생태공간으로 바뀌었고 녹슨 철제 구조물은 오히려 정원의 조형물로 재탄생했다.
지금 이 유산은 다시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유담담: 선유도의 시간 속 풍경을 담다’ 일환으로 조성된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 작품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의 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김 교수는 시아노타입이라는 오래된 사진 인화 기법을 활용해 선유도에 식재된 나무 이파리 형상을 햇빛 프린팅을 해 캔버스 천에 새겨넣었다. 푸른색 직사각형 천 안에 나무 이파리가 새겨진 모습은 마치 물속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자아낸다. 단순한 식물 그림자가 아닌 한때 정수장이었던 선유도가 지금의 생태공원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의 그림자를 나타내는 듯하다.
김 교수는 선유도공원에 설치된 기존 난간도 과감히 걷어냈다. 난간을 제거한 자리에 정자 형태를 더해 방문객들이 정수장 시설을 직접 바라보고 앉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아연 교수는 “물이 바로 옆에 있는데 등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답답해 난간을 뜯고 수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며 “이곳에서 화사한 낮과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밤의 색다른 풍경을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설명했다.

깊은 상처를 간직한 땅, 노을공원도 예술 생산 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노을공원은 ‘난지도’라 불리며 서울의 쓰레기를 받아내던 거대한 매립지였다. 퇴적된 쓰레기 위로 흙이 덮이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도심 속 초록 언덕이 됐다.
하지만 그 땅 아래에는 여전히 쓰레기 지층이 남아 있다. 공공미술 작품 ‘새로운 지층’은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국제지명공모를 통해 선정된 김효영 작가의 이 작품은 과거 꽃의 섬이었던 노을공원이 쓰레기 매립지로 변했다가 생태공원으로 되살아난 과정을 ‘지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김 작가는 ‘흙다짐 기법’을 활용해 자연재료인 흙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벽체에 땅의 시간과 기억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작품은 단지 조형물에 그치지 않고 노을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쉼터가 돼 주고 있다. 김효영 작가는 “노을공원을 둘러보니 그늘이 너무 없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큰 그늘을 만들고 싶었다”며 “흙벽 위로 빛과 나무 그림자가 떨어지고 자연을 서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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