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구 언론인]
한국 사회는 지금 거대한 인구구조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2025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3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 평균 13%의 3배 이상이다. 그러나 공적·사적 연금은 미흡하다. 국민연금 수급률은 전체 노인의 40%대에 불과하며, 수급액 또한 최저생계비 수준을 밑돌고 있다. 한국 사회가 품격 있는 노후를 설계할 능력과 의지를 갖췄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기초연금 지급 확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확대 등을 통해 노후빈곤을 퇴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기본사회’를 화두로 복지 혁신을 선언했다. 노동시장 밖에 있는 국민에게도 존엄한 삶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철학은 기본소득, 공공임대주택, 공적 돌봄 등 다양한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노후소득 문제는 기본사회 실현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기본사회와 기본소득 논의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의 모형은 전 국민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전면적 기본소득, 선별적 시범사업부터 시행하는 부분적 기본소득,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지역 기본소득 등으로 설계할 수 있다. 재원으로는 부가가치세, 토지세, 탄소세 등을 활용하거나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정립, 근로의욕 저하 논란, 지속가능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의 한계와 개혁
먼저 국가는 현재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한 달에 최대 32만 3천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한 달 생계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부 감액 규정, 국민연금과의 연계로 인한 역진성 문제 등 제도 설계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단순히 ‘복지 확대’가 아니라 ‘제도 구조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한 달에 최소 40만 원 이상으로 인상, 부부감액 폐지 등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기본소득과 비교하면 지급대상의 연령, 소득비중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 부분에서 통합을 추진할 경우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조금 더 충실하게 개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농촌 기본소득’과 마을자치연금 도입
다음으로 전북 순창군이 8월 1일 발표한 ‘농촌 기본소득’이 이목을 끌고 있다. 순창군은 2026년부터 모든 군민에게 연 100만 원의 ‘농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농촌 고령화와 인구 이탈에 대응하는 동시에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고 지역공동체의 회복을 꾀하는 새로운 복지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군 단위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시도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기본소득형 정책실험’으로 전국 확산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재원 확보와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공단은 2021년 8월부터 익산시와 함께 성당포구 마을에서 한 달에 10만 원을 70세 이상 어르신에게 지급하는 마을자치연금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마을자치연금제는 이후 완주군, 해양수산부 등과 함께 시행하는 지역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마을자치연금제는 공동체 기반의 노후소득 보장체계로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유용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마을이 기금을 모아 자체적으로 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이 방식은, 국가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공동체의 연대감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한국형 3층 노후소득보장체계
그렇다면 이 흐름을 전국 차원의 공적제도 개혁으로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기초연금 확대 + 소득비례형 공적연금’의 통합모델에 있다. 바로 캐나다형 연금 체계의 한국화이다. 캐나다는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OAS), ▲소득에 비례해 납부와 수급이 이뤄지는 공적연금(CPP), ▲자발적 개인연금 등 3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지속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소득비례형 공적연금은 사각지대를 줄이고, 연금 재정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다.
한국도 이러한 방향으로 개편할 수 있다. 기초연금은 보편적 권리로 확대하되, 국민연금은 소득비례로 설계하고, 공동체연금이나 사적 준비를 제3축으로 장려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기금 고갈 시점을 둘러싼 공포심 조성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초보장과 소득재분배, 제도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한국형 3층 보장체계’로 개혁의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기본소득과 연금개혁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기본사회는 복지정책 간의 경계를 허물고, 삶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시민의 자율성과 창의를 끌어올리는 사회다. 농촌기본소득과 공동체연금이 지역에서 시작되고 있다면, 이제 중앙정부가 그 실험을 체계적 개혁으로 연결할 때이다.
고령화의 쓰나미 앞에서 ‘나중에’라는 말은 사치다. 지금, 한국인의 노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기초연금 확대, 국민연금 개혁, 기본소득 실험, 공동체 기반 자치연금까지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이 모든 퍼즐을 엮어내는 종합적인 시야와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품격 있는 노후는 복지가 아니라 권리이며, 미래 복지국가의 핵심 기반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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