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사면 제도의 본질과 한계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이재명 정부의 첫 사면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날카롭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지만, 사면권의 오남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국 전 대표, 윤미향 전 의원, 최강욱 전 의원 등이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는 것도 논란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사면 제도의 뿌리는 군주국가 시절 왕의 대권의 하나로 인정되던 은사권(恩赦權)이다. 민주화 이후 왕의 대권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사면권은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원수의 중요한 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 왕의 은사권은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있을 때,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왕의 덕(德)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황태자가 태어난 것 등의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로 행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에서 이런 이유로 사면권이 행사되지는 않는다.

민주국가에서 사면권이 인정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법부의 판결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부의 판결은 정당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국익을 위해 사법부 판결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전자의 예로는 부당한 사법부 판결로 처벌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사면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수십 년 후에 대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로 인정되었던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의 희생자를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사면을 통해 구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후자의 예로는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범인 중의 한 명이었던 김현희에 대한 사면을 들 수 있다. 대규모 인명피해의 책임에 따라 사형판결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나, 당시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현희를 사면하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사면권은 자주, 그리고 대규모로 행사되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8차례에 걸쳐 500만명 이상을 특별사면하였다. 가장 많은 사람은 교통법규 위반자의 벌점 사면이었지만, 사면의 오남용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웠다.

당시 대규모 사면의 논거는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과연 사면이 통합의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사면은 영호남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후보 등의 동의를 얻어 시행하였고, 영호남 갈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면은 통합보다는 갈등의 원인이 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비리 정치인들, 고위 공직자 및 재벌총수 등에 대한 사면이 반복되면서 이들은 법원의 유죄판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들의 반발이 커졌다. 법 앞의 평등이 사실상 무너졌고, 이들은 특권계층으로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형기를 채우지 않고 사면으로 곧 풀려나온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러한 비판이 계속 확산되고 언론에서도 이를 계속 다루면서 사면의 횟수와 규모는 점차 줄어들었다. 수만명,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사라졌고, 해마다 3·1절 특사, 광복절 특사 등이 계속되는 것도 사라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면은 외국에 비해 여전히 많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사면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는 과도한 사면이 법치의 실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기울여 법원의 재판이 확정되었는데 이를 일거에 무효화시키는 사면은 사법부를 허탈하게 만들며, 국민들의 불신을 유발한다.

선진 외국에서 사면이 매우 제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독일에서는 1949년 이래 단 4명에 대해서만 사면이 있었고, 프랑스는 20여 명, 미국은 최근 사면이 많아지면서 수백명에 대한 사면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대한민국과 비교할 수는 없으며, 사면이 그렇게 잦은 나라도, 수천명 이상을 일시에 특별사면한 나라도 없다. 

잦은 사면, 대규모 사면은 법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든다. 사면은 단순히 사법절차에 따른 각종 형벌과 제재, 즉 사법절차의 결과만을 백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 자체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반복되는 사면으로 사법절차에 따른 각종 제재가 유명무실하게 된다면 누가 그 절차를 존중하겠는가?

그동안 사면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현행 사면법에 따라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위해서는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법무부장관이 사면을 상신(上申)하여야 한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이 위원장이고, 법무부장관이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원회는 실질적인 사면권 행사의 통제수단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의 상신만이 사면권 행사의 통제수단이라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한 통제가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면권 행사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사면권 행사의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사면권을 헌법개정 없이 축소 또는 폐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법적 판단의 결과를 뒤집는 사면에 대해 법률로 실체적 요건(예컨대 특정 범죄나 특정인에 대한 사면의 금지)을 추가하는 것도 곤란하다. 하지만 현행 사면법상의 사면심사위원회를 실질화함으로써 오남용을 축소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면심사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공무원이 위원이 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임명되어야 한다. 또한 심사의 기간을 충분히 두어야 할 것이며, 사면권의 행사 이전에 심사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면심사위원회의 검토 결과가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지는 못하더라도 심사과정의 공개는 사면의 오남용 통제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사면권의 의미와 그것이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는 경우를 올바르게 알고, 그 바탕 위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말 그대로 무겁게 행사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사면권의 행사는 그 하나 하나가 대한민국의 역사에 기록되어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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