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윤 어게인에 갇힌 보수 …누름돌을 잃다

  •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 할 길 ①

[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보수의 수난시대다. 국민의 힘이 6‧3 대선 패배로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해산이 답"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8월 22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는 '극우'와 '반극우' 진영 간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아주경제는 '대한민국 보수가 나아갈 길' 기획 칼럼을  이달 말까지 7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 할 길 ①

‘버크 보수주의'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1729~1797)가 오늘날 한국의 보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한때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맞서던 그 보수주의가 이제 한국에서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물론 우리 보수주의의 토대가 처음부터 견고했던 것은 아니다. 민족국가로서의 출발도 늦었고,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공산세력의 침입으로 분단되어 지금까지 그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며 세계 10위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 보수주의를 논할 때 이 성취야말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보수(保守)는 뭘 ‘지킨다’는 뜻이다. 뭘 지키는가. 생명, 안전, 재산, 일상,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그 대상이다. 이 ‘지키자’는 생각이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확장됐을 때 이를 ‘보수주의’라고 한다. 그 출발점 역할을 버크가 했기에 ‘버크 보수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버크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영국 하원의원을 지냈다. 의회주의자였던 그는 일관된 자유의 투사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주위의 예상을 깨고 프랑스를 맹비난한다. 왜? 추상적 정치이념에 기초한 급진적 개혁에 평소 반대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로서 실체를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보수주의란 무엇인가–반프랑스혁명에서 현대 일본까지>, 우노 시게키 지음, 류애림 옮김, 연암서가)
 
1950년대 들어 보수주의 부활의 봉화를 올린 사람은 러셀 커크(Russell Kirk 1918~1994)다. 그는 저서 <보수주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에서 보수주의의 6가지 규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⓵자연법에 대한 믿음 ⓶획일성과 효율주의의 지배에 대한 반대 ⓷문명사회에서 서열과 계급은 필요하다는 확신 ⓸자유와 소유권은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신념 ⓹추상적 계획에 기초해 사회를 개조하려는 궤변가, 계산가, 이코노미스트를 믿지 않기 ⓺변화가 꼭 유익한 개혁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인정하기 등이다.
 
19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흉물스러운 것이었다. 현대 보수주의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윌리엄 버클리도 보수주의라는 용어 사용을 꺼려했다고 한다.(황성준, , 미래한국미디어, 2014년)
 
러셀 커크의 보수주의 6대 규범을 보면서 필자는 그 내용만 보면 건국 이래 한국 보수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보수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태평양 건너 오히려 우리 쪽에서 더 격화되고 있다. 우리도 커크의 6가지 규범 같은 현실적 대안을 보수와 진보가 함께 내놓고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보수주의’라는 협소한 공간을 설정하고 거기에 안주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려면 ‘보수주의’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 정당정치에선 ‘보수주의’ 하면 기회주의, 책임회피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양당제, 또는 1.5정당제도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일까. 과거 한때 ‘보수정당’이라고 하면 주요 결정은 이미 다른 기관이나 라인에서 다 이뤄지고 난 상태를 의미할 때도 있었다. 권위주의 시절과 3김 시대를 거치면서 그런 인식이 강했다. ‘보수정당’은 허울만 ‘열린 정당’이었다.
 
그렇다고 보수주의를 뛰어넘는 해법을 당장 기대하기도 어렵다. 러셀 커크 같은 지도자라도 줄줄이 나온다면 모를까. 역대 정당대표들이나 집권 여당의 행태를 보면 어림없는 소리다. 집권 여당대표가 “야당 인사들은 사람도 아니어서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런데 그는 정말 몰랐을까. 스스로 ‘한 건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무릇 정치에선 그런 망언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어지러운 한국정치의 현실 앞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와 보수정당의 귀환을 기대한다. 그게 그나마 정치의 폭력적 일탈을 막고 정치를 제도의 끈에 묶어둘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혹여 필자를 골수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해도 감수하겠다.)
 

‘윤 어게인'

유감스럽게도 요즘 국민의힘은 보수를 참칭(僭稱)하고 있다. 그들은 보수의 가치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 당을 어떻게 되살릴지 관심도 없다. 관심은 오직 ‘윤 어게인’ 여부에 쏠려있다. ‘윤 어게인’ 또는 그 반대 루트를 통해서라도 다시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게 지상 목표처럼 보인다. ‘보수’를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보수정당’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대자들로부터 ‘극우 유튜버‘로 분류되는 전한길씨는 지난 12일 행사장인 부산 해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부산 유엔공원에서 유튜브 방송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정치깡패”라고 비난한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를 “한동훈 끄나풀로 윤 전 대통령 등에 칼을 꽂은 의리도 없는 동네 양아치들”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막말을 공당이자, 명색이 제1야당이 왜 들어야 하나.
 
당은 2023년 3월 전당대회에서 통일교가 윤 전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를 밀기 위해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입당시켰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일부 당원들은 당적 대조까지 받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눈에 비친 국민의힘(국힘)은 내부 싸움에만 몰두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당, 바로 그 ‘보수정당’이다.
 
국힘이 내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8·15 사면의 문이 열렸다. 관심을 모았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석방 소감을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민주진보 진영은 더욱 단결하고 더욱 연대해야 한다.” 이 말이 국힘의 가슴에 어떻게 들렸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국힘은 지금이라도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종교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남 탓을 하지 말고 스스로 정치는 정치에, 종교는 종교에 맡긴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설령 한두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고 해도 그게 보수의 본류를 자임하는 정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다.
 
필자는 이 졸문을 쓰면서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정치학자 우노 시게키의 저서 <보수주의란 무엇인가>에 크게 의존했다. 그는 동양인의 눈으로 보수와 진보와의 관계를 쉽고도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더욱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보수주의가 자주 키워드로 삼는 말에 전통과 권위가 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언가, 강제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무언가, 이러한 것이 인간의 정신에는 필요하다고 예로부터 보수주의자들은 주장해왔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에게 (일종의) ‘누름돌’과 같아서, 그것이 없으면 인간의 정신은 끝없이 허공을 부유하게 된다. 자신은 그 어떤 전통으로부터도 자유로우며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허세를 부리다 보면 도리어 사고의 기준이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전통’과 ‘권위’가 존재할 때 인간은 오히려 주체적이 된다고 보수주의자들은 생각했다.”


‘누름돌’의 미학

나는 ‘누름돌’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절묘한 비유이자 경고였다. 보수주의와 보수정당의 존재이유를 이보다 더 쉽고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 하지만 자칫하면 허공을 떠도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누름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아닌가. 어쩌면 인간의 비극은 이 ‘누름돌’의 존재를 몰랐거나 무시하는 데서 초래되는 건 아닌지, 필자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다고 너무 무거운 ‘누름돌’을 지니면 날기는 고사하고 그 무게에 깔리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전 대통령 부인의 고가(高價) 목걸이 수수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는 남편 재임 중 인사 청탁의 대가로 고가의 목걸이를 선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보수의 재건을 외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보수를 아예 절멸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누름돌’의 미학을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김 여사는 다른 사건들에도 연루돼 있어 무겁고 긴 사법처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는 14일 특검팀의 첫 조사를 받은 후 자신의 변호인들에게 이런 말로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내가 다시 내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그의 탄식이 보수주의, 보수정권의 내일을 새롭게 여는 한 키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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